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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확진자 동선 공개 달리해야 / 서홍관

등록 2020-03-19 18:24수정 2020-03-20 15:43

서홍관 ㅣ 국립암센터 의사·시인

국민들이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동선 공개가 더 두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현재 방역 당국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의 동선을 공개하고 있다.

국민들이 사생활이 노출되는 동선 공개를 두려워하면서도 받아들이는 이유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병원이나 환자들의 동선을 숨기는 바람에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안 좋은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선을 투명하게 공개하다 보니 드러나는 문제도 있었다. 환자의 사생활이 전 국민에게 샅샅이 드러났고, 신상털기가 벌어지기도 했고, 온갖 비방에 억측까지 더해져 코로나19 감염자는 심각한 2차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이 공개될 때마다 “아니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어디를 저렇게 싸돌아다닌 거야?” 하면서 마치 확진자가 병균을 일부러 퍼뜨리기 위해 돌아다닌 범죄자인 양 취급하기 일쑤였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이달 15일 지방자치단체에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즉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나 거주지 세부 주소나 직장명 등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고, 공개 기간도 증상 발생이 있기 하루 전부터 격리일까지로 제한했다. 늦었지만 올바른 방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확진자들의 행동반경이 시간대별로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공개되는 업소의 피해가 우려된다. 어떻게 하면 필요한 정보는 공개하면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업소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을까?

대안은 방역 당국이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되 그 동선을 공개하지는 않는 것이다. 일단 방역 당국이 환자의 동선을 파악하여 전파 위험이 없는 공간은 공개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지나간 거리나 업소 등 환자의 동선 일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개할 경우 사생활 노출뿐 아니라 불필요하게 피해 보는 업소가 많아진다. 코로나19에 걸려서가 아니라 사업이 안되어서 죽겠다는 사람이 나올 정도다.

방역 당국이 의미 있는 접촉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시간과 장소는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커피숍에 한 시간 머물렀다고 하면 그 시간과 장소는 공개하되, 전후 동선은 공개하지 않는다면, 확진자의 사생활은 덜 노출되고, 그 커피숍을 이용한 사람들은 스스로 점검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또 국민들이 매일 환자들의 동선을 쫓으면서 환자 한명 한명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릴 필요는 없으니 국민들 정신건강에도 이로울 것이다.

정보 공개에서 우리가 빠뜨려서는 안 되는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어떤 식당을 코로나19 확진자가 이용했다는 정보를 공개할 때 방역 당국은 그 식당에 어떻게 방역조치를 취했는지를 같이 설명하고, 그곳이 지금은 안전하다는 정보를 같은 장소에 올려줘야 그 업소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이 코로나19 감염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가 확진자의 동선 공개를 제한한다면 일부 국민은 분명 불신을 표시할 것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공개하되, 불필요한 동선을 적극 판단함으로써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각 영업소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면 대다수의 국민은 찬성할 것이다.

전세계는 우리나라가 이번 코로나19 유행 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한 환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격리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제 우리가 정보공개에 있어서도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업소들의 피해도 최소화하는 지혜를 찾아 전세계에 알려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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