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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즈모폴리턴] 홈리스, 코로나19가 드러낸 빈틈 / 조일준

등록 2020-03-19 18:29수정 2020-07-10 15:54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무료 보건 민간 서비스인 ‘하이트 애시베리 프리 클리닉’ 소속 의사가 샌프란시스코의 한 거리에서 노숙자와 상담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FP 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무료 보건 민간 서비스인 ‘하이트 애시베리 프리 클리닉’ 소속 의사가 샌프란시스코의 한 거리에서 노숙자와 상담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F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인류를 엄습하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중국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19가 불과 100여일 만에 전 세계 152개국으로 퍼졌다. 잦아들 기미는커녕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지난주 세계보건기구(WHO)는 고심 끝에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1948년 창설 이후 세 번째다. 19일 저녁 현재(한국시각) 전 세계 누적 확진자 수가 22만명, 사망자는 9000명을 넘어섰다. 18일(현지시각)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도전”이라며 “(대응의) 집단적 연대”를 강조했다. 앞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란 표현을 다섯 차례나 되풀이했다.

전쟁이 나면 누가 가장 위태로울까? 군인이 아니라 비무장 민간인, 그중에도 여성,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신체적·사회적 약자들이다. 전·후방과 정규군-비정규군 구분이 흐려진 현대전에선 더욱 그렇다. 전쟁 사망자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계를 모르고 사람(숙주)을 가리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그 전형이다. 대다수 감염국이 국경을 통제하고, 의료 인프라 부족에 아우성치며, 국민에게 “집에 머물러 있으라”며 외출 금지령을 내린다. 예방적 ‘자가 격리’ 내지 ‘자택 대피’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구멍이 있었다. 홈리스(노숙자)들이다. 애초에 격리하거나 대피할 거처도 없이 사회에서 유폐됐으나, 역설적으로 모든 이가 움츠러들 때 존재가 두드러지는 이들이다. 일정한 주거는커녕 음식과 위생 환경이 열악하고 건강 상태도 나쁜 홈리스들에게 바이러스는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팬데믹 시대에 노숙자는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넘어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할 수도 있는 ‘방역의 사각지대’임을 선명히 드러낸다.

미국에선 처음으로 18일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에서 노숙자 사망이 공식 확인됐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불행하게도, 이 사례가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숙자들은 주거 특성상 보건위생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다른 노숙자나 행인에게 병원균을 옮길 우려도 크다. 빈부 양극화로 노숙자가 급증하는 것도 문제다. 이 카운티에서만 2017~2019년 사이 노숙자가 30% 넘게 늘어 9706명이나 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8일 “시의 대중 모임 금지에도 노숙자들이 여전히 거리에 머물거나, 사생활이라곤 없는 텐트에 한데 모여 지낸다”고 전했다. 이는 시 당국의 고육책이기도 하다. 시의회는 노숙자들의 대인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단 텐트에 머물도록 하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은 노숙자들을 휴교령이 떨어진 학교나 빈 교회, 주 소유 건물에 임시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 지사는 이날 “10만8000명의 주내 노숙자 중 6만명 이상이 8주 안에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통계 모델이 있다”고 경고했다. 노숙자들의 호흡기 질환 치료와 감염자 격리 수용에 1억5천만달러(약 1900억원)를 집행한다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미국 연방정부도 이날 노숙자 단속을 4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한다고 밝혔다.

17일 영국 런던의 레스터 광장의 한 벤치에서 한 시민이 ‘미스터 빈’ 동상 옆에 앉아 코를 풀고 있다. 18일 영국 정부는 이르면 주말께 코로나19가 가장 심각한 수도 런던을 봉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17일 영국 런던의 레스터 광장의 한 벤치에서 한 시민이 ‘미스터 빈’ 동상 옆에 앉아 코를 풀고 있다. 18일 영국 정부는 이르면 주말께 코로나19가 가장 심각한 수도 런던을 봉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유럽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영국 지방자치단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전역의 노숙자들은 약 2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일간 <가디언>은 18일 “노숙자 대다수는 약물과 알코올 중독으로 면역체계가 손상된 상태이며, 노숙자 사망 5명 중 2명은 마약 중독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전국 지자체들의 노숙자 방역 대책 총액이 320만파운드(약 47억원)으로 일인당 겨우 128파운드(약 19만원) 꼴”이라며 “이게 푼돈이라면 ‘푼돈’에 대한 모욕일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가디언>은 정부가 재난기금을 활용해 노숙자들을 전국의 호텔에 수용하고 그들의 재생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2016년 기준, 영국 전역의 호텔 및 숙박시설에 87만4300개의 객실이 있으며, 노숙자 모두를 수용해도 전체 객실의 2.9%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몽상 같은 말로 들릴 수 있지만 몽상이 아니며, 몽상이어서도 안된다”며,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상당한 경제학적 근거가 있다”고도 했다.

아직 백신은커녕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은 시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된다. 사람 간 전파되지 않도록 접촉을 삼가는 ‘물리적 거리’를 말한다. 뒤는커녕 옆도 돌아볼 새 없이 경쟁하고 질주해오던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잠시 멈춤’이 곧 ‘삶의 나락’일 수 있는 사람도 많다. 평소 관심이 없거나 눈에 잘 띄지도 않던 홈리스가 국가 방역체계의 빈틈이 되고 있는 현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별개로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취약층을 방치하지 않는 ‘사회적 연대’가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운다.

“악마는 디테일(detail, 세부 사항)에 있다”고 한다. 천사의 보살핌이나 인간적 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적 필요에 따른 ‘사회적 안전망’ 역시 디테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2008년 금융위기보다 심각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집에 불이 났을 때 가장 시급한 것은 인명 구조다. 숙주(사람)를 가리지 않는 바이러스와 맞서는 상황에서 사람이 구조 대상을 가릴 게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우선순위를 둔다면, 가장 약자를 가장 먼저 보살피는 게 맞다. 노숙자뿐 아니라,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가구 등 ‘디테일’하게 돌아볼 주변이 적지 않다.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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