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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 언론과 주민의 ‘생성적 로컬리즘’

등록 2020-03-24 18:17수정 2020-03-25 02:34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땅이 더 넓어지고 다채로워진 것 같았다. 근래 뉴스를 보면서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는 광주·전남 아니면 서울로 거칠게 단순화되어 있던 우리나라에 대한 지리적 형상이 코로나19 발생 사건을 좇아 지역 여기저기로, 사회 곳곳으로 확장되었다. 선거 때 잠깐을 제외하고는 얼굴 볼 일이 없던 다른 지역 자치단체장의 얼굴도 쉽게 접할 수 있고, 방역 담당자 등 해당 지역에서 일하는 여러 공무원과 전문가의 얼굴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몇몇 언론인을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했던 지역 기자들의 이름도 하나둘 외울 정도가 되었다. 좋게 생각하자면 지역 뉴스에 관한 한 코로나19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문득 이번 일이 지역 언론의 지역성 구현과 관련해 어떤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누구나 공감하듯 요즘처럼 뉴스에 대한 주목도가 높고 충실한 소비가 많은 때도 없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찌감치 집으로 모여든 가족들이 모두 뉴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역 뉴스에 대한 관심과 주목이 더 높다. 어디가 안전하며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 구체적 일상에 관한 보도는 지역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지역 미디어가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이목을 끌었던 한마음아파트 관련 소식도 현지 상황에 밝은 <대구문화방송(MBC)>의 특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세월호 사건 보도를 비롯해 손혜원 의원의 목포 땅 투기 의혹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중앙과 지역 언론의 대결도 현지 상황을 누가 더 자세히 알고 있느냐의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고 명료했다. 덕분에 요즘에는 지역 뉴스가 나와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챙겨 본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일련의 과정은 지역을 잘 아는 미디어가 지역에 대한 뉴스나 정보를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의미 이상의 것을 시사했다. 바로 생성적 로컬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생성적 로컬리즘은 한마디로 내가 속한 공동체와 지역에 관한 정체성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가 차지하는 역할이 지대함은 물론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전국 뉴스에 등장하는 의료전문가 말고 우리 지역에도 관련 내용을 충분히 잘 전달해주는 의료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과 지역 단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내가 속한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생성적 로컬리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지역 미디어가 구현해야 할 지역성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료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마을 단위로 더 촘촘하게 좁혀 들어가는 것이 맞는지, 지리적 장벽을 뛰어넘어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들로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 맞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다만 지역 언론은 지역에 관한 정보와 인물을 더 많이 발굴하고, 지역민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 이 과정을 통해 모든 지역이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며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더 넓고 다채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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