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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선매입 약정 소비보조금제 도입을 제안한다 / 김용기

등록 2020-03-29 18:22수정 2020-03-30 02:37

김용기 ㅣ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그야말로 ‘정부의 시간’이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3월20일치 보도를 통해 “가라앉는 배에 무신론자가 없듯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상황에서 자유시장론자는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맷 행콕 보건부 장관이 롤스로이스 등 제조기업들에 부품과 소재를 바꿔 의료용 산소호흡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전하면서 나온 평가이다. 행콕 장관은 “민간이 아닌 오직 정부만이 이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 정부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시장경제, 작은 정부, 민영화를 내걸었던 영국 보수당 정부가 내놓은 첫번째 대책의 규모는 3300억파운드(481조원 상당)였다. 휴업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임금의 80%를 지급하겠다는 대책이 며칠 후 이어졌다. 독일 대연정 정부는 7500억유로(1010조원)의 대책을 내놓으며 실업과 도산을 막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2조달러(2480조원)의 현금 살포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다.

국내서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현금 지원책이 제기되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도민 전부에게 1인당 10만원을 지급한다고 선언했다. 1조3642억원이 든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털었다”며 직접 지원이 가처분소득과 소비의 증가로 이어져 경기 회복에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유효수요를 늘리는 게 중요하고 정부의 파격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가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정책으로 기본소득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갖는다. 하지만 한국의 위기는 유럽과 미국이 겪는 위기와 적어도 현재 단계에서는 다르다는 점, 현재는 위기의 초입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 심화될 수 있는 미래를 대비해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기적으로는, 유럽·미국과 달리 한국은 경제활동이 전면적으로 멈춰 서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음식, 숙박, 여행과 레저, 오락, 학원·이미용·헬스 분야 개인사업 서비스 중심으로 타격이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들 부문에 속한 사업자와 노동자의 소득이 0으로 수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머지 노동자와 사업자의 소득과 구매력은 적어도 현재는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모두의 구매력을 높이기보다는, 취약계층에 대한 소득 지원과 함께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다수의 구매력을 소비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매입조건부 소비보조금 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15살 이상 전 국민이 영세 개인사업체를 대상으로 100만원의 사용을 선약정하고 나중에 사용하고 나서 정부가 10%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소비 감소의 문제점을 미래에 예상되는 소비 증가를 현재화함으로써 상쇄하자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가 2020년 중 소비하고자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자(영세 개인사업자)로부터 1인당 100만원 한도에서 선매입하는 약정을 체결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선매입 약정은 향후 3개월 이내에 이뤄지도록 한다. 지금 현금 지원을 해도 영세사업자 대상으로 소비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 대규모 온라인 소매업만 대박을 터뜨릴 것이다.

선매입 약정의 결과는 1년 이내 최대 40조원(15살 이상 인구 4450만명×100만원×0.9)의 구매력이 영세 개인사업자 대상의 매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정부 보조금 4조원이 인센티브로 작동해 영세 사업자의 추가 수익으로 잡힌다. 10만원 현금 보조나 10% 할인된 100만원 상품권과 다른 점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어나기 어려운 상품·서비스 구매를 사전 약정을 통해 미래에 확실하게 일어나도록 소비자와 공급자가 약속한다는 점이다. 약정을 근거로 영세 개인사업자는 은행에서 동산 담보대출을 받는다.

중기적인 정책으로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산업과 대기업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원책이 준비돼야 한다. 여행·호텔업부터 시작해 무역 비중이 높은 기계장비, 자동차, 철강·비철금속, 화학 등 분야에 지원하기 위해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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