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란 ㅣ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이런 선거가 있었나 싶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 등록이 지난 26일과 27일로 끝났다. 4·15 총선 선거전이 본격화됐지만 지역에서는 아직 선거 분위기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후보들은 유권자를 대면할 기회조차 없이 매일 거리로 나올 뿐이다.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는 게 전부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는 동안 불안 속에 일상이 바뀌었고 텔레그램 엔(n)번방 성착취 사건으로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지역 내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4·15 총선은 관심사로부터 밀려나 있다.
그러는 사이 후보 등록 시작일인 26일 전에 경남 진주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듯이,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마산합포 이주영 의원과 진주을 김재경 의원이 아예 공천 대상에서조차 배제됐다. 이주영 의원은 5선, 김재경 의원은 4선 의원이다. 처음에 두 의원은 결정에 불복해 공천관리위원회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경남지역 공천 배제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자신들은 무소속 출마를 단행할 것이라 공표했다. 먼저 백기를 든 건 마산합포 이주영 의원이었다. 23일 당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며 불출마 발표를 했다. 그리고 이주영 의원은 곧장 경남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들어앉았다.
김재경 의원의 행보는 좀 더 강경했다. 후보 등록일 직전까지 당과 줄다리기를 하며 계속 뻗대는 모양새였다. 이 와중에 김재경 의원의 전위대로 나선 것은 미래통합당 소속 진주시의원들이었다. 박금자, 백승흥, 이현욱, 임기향 등 네명의 시의원이 “공관위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김 의원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컷오프하고 하위 후보들만으로 경선을 통해 공천자를 선정한 것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항의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미래통합당 탈당계를 내겠다고 나섰다. 모두 진주을 김재경 국회의원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인물들로, 자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김 의원 쪽과 사전 모의된 행보였는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듯하다. 도긴개긴이다.
이상하게도, 이 사건을 두고 지역 내에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해당 정당의 집안일이고, 밥그릇 싸움이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지역 정치판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어서 그럴까. 물론 이런 일이 지역 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 진주갑 최구식 의원이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계를 내자 진주시의회 최임식, 강면중, 조현신, 김구섭, 강석중 의원이 덩달아 탈당계를 냈다. 모두 최 의원의 지역구인 진주갑 출신이었다.
지방의회는 절대 자치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지역 정치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다.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의 하수인이냐, 지역구 관리책이냐는 어제오늘의 말이 아니다.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는 2006년부터 시작했다. 정당책임제에 의한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 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오히려 국회의원들에게 권력의 칼자루를 쥐여준 격이 됐다. 사실상 국회의원이 틀어쥐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됐고, 후보 공천 과정에서 원칙도 민주적 절차도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먹이 피라미드만 남았다. 지역 패권만 난무하고 대의정치는 없다.
4·15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도 아닌 시의원들의 갈지자 행보를 굳이 짚는 것은 힘들지만 앞으로 4년을 위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관심을 갖고, 지역에서부터 민주적인 국회의원을 가려내자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 지방의회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지역분권을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지역으로 가져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혁신과 민주주의, 그 첫걸음은 선거에서 시작된다.
아, 진주을 김재경 국회의원은 후보 등록일 전날인 25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럼 덩달아 탈당계를 내겠다고 선언한 미래통합당 진주시의원 네명은 어찌 됐냐고? 30일 이현욱 시의원만 공천 원칙 제기하며 탈당계를 내고, 나머지 세 의원은 ‘그대로 미래통합당’이다. 아직까지 아무런 해명이 없다. 이들에게 이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