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ㅣ 시민참여연구센터 운영위원장
봄이 왔지만 마음은 봄 같지 않다. 꽃 피고 날 좋은데,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뿐이다.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맞는 21대 국회의원 선거 현실에 대한 막막함이고, 선거 이면에 깔려 있는 한국 사회의 이슈 구도에 대한 답답함이다.
위기와 혼란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안정적인 시기에 당연한 듯 여기며 지나쳐온 질문들을 끄집어내어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예견은 전망이라기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한 시대적 고백에 가깝다. 그러나 선거 국면의 한국 사회는 코로나19 이후의 방향성을 고민하길 멈춘 듯하다.
어쩌면 또 이렇게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낼지도 모른다.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다짐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4·16 세월호 참사, 2016~17년 촛불 정국과 전임 대통령 탄핵의 경험 앞에 시민사회와 지식인, 대다수 정치 지도자들이 ‘이전과 다른 사회’를 주장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더 깊은 과거의 질곡으로 남아 풀리지 않는 반목을 재생산해왔고, 정쟁과 꼼수로 정치의 시간은 허비되고 있다. 그만큼 국가·사회 혁신의 길도 멀기만 하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그새 까마득해진 기억을 소환해보자. 세계인들이 마음 졸이며 주목했던 호주 산불이 8개월 만에 진화 종료된 것이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기 수일 전 일이다. 2018년 4월의 플라스틱 대란, 뒤이어 이슈화된 미세 플라스틱 문제는 어떠한가? 이들 사건 모두 국민의 뇌리에 당혹감과 불안함이 서린 질문을 깊게 남겼다. “현재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진행형의 코로나19 사태 또한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바야흐로 인류는 발전의 다디단 열매가 아닌 지구화된 재앙의 현실화와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의 고민과 도전은 자신들 앞가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가장 깊은 질문을 짚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온 근원적인 문제들은 현재의 선거 국면에서 힘을 잃고 있다. 의석 다툼에 빠져 꼼수 위성정당과 코로나19 정쟁으로 사분오열하는 양상에 국민의 마음도 갈라지고 정치적 피로감은 더욱 커졌다. 초원 전역이 불타는데 수사자들의 내부 권력다툼에만 모든 시선을 뺏기고 있는 형국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앞으로의 4년은 미래를 위한 큰 변화를 준비하고 맞이할 중대한 전환의 시간이 될 것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에 세계적 위기가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한편, 향후 새롭게 전개될 산업재편과 국제 주도권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시대적 위협 요인들에 맞서 안전과 번영을 함께 지키기 위한 기술·산업·사회의 전방위 혁신 전략을 모색하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가 눈앞에 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 보여준 저력을 토대로 담대한 기획과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2020년의 정치는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국민의 불안하고 절실한 질문에 더욱 분명한 자세로 응답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1990년대 아이엠에프(IMF) 시절처럼 국민의 희생과 헌신에 기대어 넘길 위기가 아니다. 기술과 사회가 급속히 발전해온 만큼 정치의 응답 수준과 역량도 높아져야만 한다.
하지만 ‘레이싱’은 이미 본궤도에 올랐고,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하라고 요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럼에도 이 나라와 국민의 미래에 대한 정당과 후보자의 분명한 대답을 촉구해야만 한다. 아울러 국민 스스로 눈을 더욱 부릅떠야 한다. 올바른 시선으로 국가와 미래를 고민하려는 이들을 가려 투표하는 지혜가, 이 엄중한 시기에 우리와 후손의 미래를 올바로 세우는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책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시간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선택의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