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ㅣ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세월호’라고 쓰인 노란색 부표가 잿빛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6년 전 깊은 물 아래로 배가 가라앉았던 곳, 참사 해역에 도착하자 선상 추모식이 시작되었다. 부모들이 오열하면, 쓰러지기라도 하면…. 복잡한 생각으로 따라나선 길이었다. 울음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저릴 것 같은 4월의 바닷바람은 차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차분했다. 조용히 응시했고 손에 쥔 국화를 말없이 바다 위로 던졌다. “보고 싶다”는 아빠의 갈라진 음성과 엄마의 터져 나온 흐느낌도 파도 소리에 묻혔다. 바다를 빙빙 도는 해경 함정 갑판 위에서 요란한 것은 태극기 휘날리는 소리밖에 없었다. 정물처럼 오랫동안 서 있던 엄마들은 세찬 바람이 불자 “우리 아이들이 다녀갔나 보다”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들에게 4월16일은 명사가 아닌 동사의 시작이다. 언 몸으로 진도대교를 넘는 순간부터 케이비에스(KBS) 앞, 국회, 청와대, 전국 방방곡곡, 세계 어디든 발길 닿는 곳으로 달려갔다. 길고 긴 투쟁의 서막이 오른 것인지 몰랐을 때도, ‘가만히 있으라’ ‘그만하라’는 송곳 같은 말들과 싸울 때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한없이 나약해 보였던 눈물 흘리는 자들의 투쟁이 어떻게 공동체의 미래를 창안해낼 수 있는지’라고 시작하는 철학자 백상현의 책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에서 저자는 “그들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의와 감당할 수 없는 정의의 간극을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시간을 출현시켰다. 유가족들이 요구한 투명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박근혜 정부가 의존하고 있던 한 줌의 유사 정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진리 효과를 산출했던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었던 적당한 수준의 정의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냈다. 유가족들의 요구는 현재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의를 낡고 초라한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그들의 투쟁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순간에도 대체로 괜찮은 사회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모두의 착각을 깨부수었다. 그날 이후로 한국 사회는 ‘이게 나라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4월16일이 지난 오늘, 세월호 유가족인 엄마, 아빠에 대해 써야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침몰 이후 비로소 침몰이 시작된 날들을 말하고 싶어서다. 그날부터 아이들이 돌아왔다. 파도 위에서 건져졌고 잠수사 손에 이끌려 올라오기도 했다. 들뜬 마음으로 사 신었던 새 신발이, 언니 몰래 입고 나간 셔츠가 뻘 흙과 뒤섞여 올라왔다. 엄마, 아빠는 볼 때마다 까무러치고 신열이 오른 것처럼 앓아누웠다. 5주기, 6주기, 4월16일이 지나면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언론들의 관심도 식지만 엄마, 아빠들의 뼈마디는 자식들 제사상 차리는 날부터 녹아내린다. 바다에서 끝나지 않은 참사는 일상을 지배했다. 얼마 전 두 명의 아빠가 아이들 곁으로 갔다. 청문회에서 울음을 터트렸던 김관홍 잠수사도 세상을 떠났다. 알려지지 않은 희생도 많다. 시연이는 참사 이듬해 시연이를 따라 떠난 친구와 함께 일산 추모 공원에 있다. 친구를 잃은 18살 소녀와 소년들에게 슬픔의 깊이는 발 디딘 지구를 잃은 것과 같았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친구를 따라 떠난 또 다른 아이들 죽음에 대한 부채까지 떠안고 산다. 그러니 4월16일은 기억해야 할 날들의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의 말들은 해마다 넘친다. 올해는 유독 더 참담한 모욕이 도를 넘었다. 그들은 참사의 피해자이고 진상규명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무사한 일상을 살아내야 할 평범한 동료 시민들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향한 모욕과 모독의 말과 행동을 막을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기억식을 마치고 돌아와 코로나로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아이와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아이는 물었다. “엄마에게 세월호 참사는 어떤 의미야?”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너에게 달려와 밥상을 차리고, 너의 일상을 지키는 것….” 이 위대한 기쁨을 그들의 깊은 슬픔이 알려주었음을 말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재난에 대한 대처와 애도의 방법을 배웠다. 다른 사회를 만들자는 다짐을 했고,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렸다. 그러니 엄마, 아빠의 돌아오는 4월들이 조금은 덜 슬프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첫번째 지킬 약속임이 분명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나누어진 책임을 지킬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