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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저널리즘 책무실, 무얼 하는 곳이죠?

등록 2020-04-21 18:26수정 2021-10-15 11:17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언론학 박사)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얹힌 느낌이다. 지난달 <한겨레>호의 새 선장이 된 김현대 대표이사가 ‘저널리즘책무실장’을 꼭 맡아달라고 했을 때부터다. 저널리즘도 어려운데 책무는 또 뭔가? 낯선 이름 때문인지 주변에서도 “뭔지 모르겠지만 어깨는 엄청 무거울 듯하다”거나 “그거 종전의 콘텐츠평가실(심의실)이 부활한 거 아니야?”라며 잠시 관심을 보였다.

물론 이런 직책이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지난 몇년 한겨레는 평판과 신뢰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조국사태 및 검찰개혁 보도를 놓고 양편으로 갈린 시민들로부터 상반되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지금도 민감한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나 회사에 걸려오는 독자 전화에는 노여움이 남아 있다. 물론 이런 게 한겨레만의 어려움은 아니다. ‘세월호’ 이후 한국 언론인은 모멸적인 별명을 얻었다. 오만한 취재, 균형 잃은 논조, 자의적인 기사 판단과 편집에 넌더리가 난 시민들은 이제 언론이 어떤 얘기를 해도 화를 내는 지경이 됐다.

무엇을 해야 하나? 한겨레는 저널리즘의 근본과 원칙을 새롭게 다지는 일부터라고 판단했다. 민간기업이면서 공적인 일을 하는 언론활동은 윤리적 딜레마와의 씨름이기도 하다. 이럴 때 원칙은 어두운 항로를 밝히는 등대 구실을 한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과 함께 윤리강령을 선포했다. 2007년에는 세부적인 지침을 담은 취재보도준칙도 제정했다. 언론사로는 둘 다 국내 최초였다. 하지만 실행 프로그램이 미흡해, 애써 만든 준칙은 편집국 한쪽 벽 액자 안에 잠들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시대에 맞지 않거나 부족한 내용도 늘어났다. 그래서 지난해 10월부터 취재보도준칙을 개정하는 팀을 가동하고 사내외 의견도 수렴했다. 이렇게 업그레이드된 준칙은 새달 창간기념일 이전에 확정해 사원과 독자에게 알릴 예정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만드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신설된 저널리즘책무실은 한겨레가 약속한 원칙과 준칙이 날마다 콘텐츠 안에 파릇하게 살아 있도록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을 한다.

앞으로 동료들과 신뢰를 되찾는 노력을 하면서 이 칼럼을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먼저, 취재보도준칙과 공정성, 투명성, 정확성 등 저널리즘 원칙에 비춰 한겨레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그 내용을 알릴 생각이다. 더 나아가 오래 입어 익숙해진 옷처럼 한겨레를 포함한 한국 언론이 문제의식 없이 반복하는 ‘관행’이란 이름의 잘못을 드러내려 한다. 검사의 말은 일단 받아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관행 같은 것이다. 아울러, 국내외 언론의 모범 사례를 찾아 소개하려 한다. 칭찬의 힘은 큰데, 언론인도 좋은 롤모델에 목이 말라 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한겨레 동료의 글을 냉정하게 비평해야 할 수도 있다. 본뜻과 달리 독자와 시민을 더 화나게 할지도 모른다. 지금 마음을 누르는 돌의 무게가 거기서 온 것이겠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옴부즈맨의 소임을 다하려 한다. 한가지 꼭 쥐고 가고 싶은 원칙은 투명함이다. 요즘은 식당에 가도 주방이 들여다보이면 음식에 믿음이 간다. 누구나 기자일 수 있는 시대에 언론인이 다 아는 듯 해봐야 소용없다. 중립적, 객관적인 척하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판단하되 근거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뉴스가 나왔는지 밝히는 게 훨씬 낫다. ‘책무’를 뜻하는 영어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도 공적인 일을 하는 이가 자기 일을 시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을 말한다.

투명한 땅 위에 공감과 소통의 싹이 튼다고 믿는다. 열린 마음으로 한겨레가 독자·시민과 함께 진실을 찾아가도록 돕는 게 내 임무다. 한겨레 콘텐츠에 대한 의견과 비판을 아래의 이메일이나 시민편집인실(02-710-0698), 고객센터(02-710-0191)로 활발히 보내주시길 당부드린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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