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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죽음의 숫자

등록 2020-05-06 11:11수정 2020-05-07 09:50

이라영 ㅣ 예술사회학 연구자

2015년 운 좋게 미국노동총연맹(AFL-CIO) 위원장인 리처드 트룸카(Richard Trumka)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중간에 이런 질문을 했다. “미국에서 자신의 일터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인 줄 아십니까?” 아무도 제대로 답을 못하는 동안 그는 “하루에 170명”이라고 알려줬다. 3억이 넘는 미국 인구를 감안해도 놀라운 숫자였다. 게다가 당시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미국의 산재 사망자는 1년에 4500명 정도인데 노총의 집계는 공식 집계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일터에서의 사망’에 대한 범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어서 트룸카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테러로 매일 170명이 죽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들 난리가 나겠죠.”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매일 업데이트되는 요즘 당시 그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테러’를 ‘감염병’으로 바꿔보자. 하루에 코로나19 확진자로 드러나는 숫자는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확진자가 4명이었던 1월 말에도 대중교통 안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반 이상이었다. 2월 말 확진자가 폭증한 이후로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눈치가 보이며, 실내공간은 마스크 없이는 입장할 수 없는 곳이 늘어났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자 정부는 공적 마스크 생산을 위한 대책 마련을 했다. 바이러스 차단을 위한 마스크 착용에는 이처럼 정부와 개인이 협심하여 공을 들인다.

어떤 숫자는 모두가 확인하지만 어떤 숫자는 공유되지 못한다. 나날이 정리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처럼, 노동 현장의 사고를 숫자로 보여준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고용노동부에서 매일 오전 10시에 전날 산재 사망자와 부상자 숫자를 발표하고, 전 세계 나라들의 산재사망자 숫자와 비교하며 ‘케이(K)-노동’의 현실을 실시간으로 공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감염병처럼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할까.

테러나 감염병이 우리를 긴장하는 만드는 이유는 ‘나도 걸릴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반면 산업재해는 ‘내가 노력하면’ 피할 수 있는, ‘나와 무관한’ 일로 생각한다. 산업재해는 감염병보다 훨씬 더 계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러스는 비정치적인 공통의 화두라 여기면서 노동이나 젠더 등은 특정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불편한 화제라는 인식이 있다.

대통령은 노동절 메시지에서 노동자는 이 사회의 ‘주류’라고 했다. 마치 ‘이제는 여자들 세상’이라는 말을 들을 때처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뒤이어 “산재는 성실한 노동의 과정에서 발생합니다”라고 했다. 노동자 내부가 ‘신분화’되고, 기업이 사람을 부품 교체하듯이 가볍게 여기도록 이끄는 낮은 벌금 액수를 생각하면 아무리 선해하려 노력해도 이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

기업은 산재를 막을 줄 안다. 몰라서가 아니다. 추락사고를 막으려면 안전망과 안전고리가 필요하고 화재 사망사고를 막으려면 샌드위치 패널을 없애야 한다는 건 다들 안다. 이런 사실을 알지만 이윤을 위해 실행하지 않는다. 더구나 산재가 발생했을 때 어떤 ‘신분’의 노동자가 죽느냐에 따라 기업의 점수가 다르게 깎인다. 그러니 산재는 성실한 노동의 과정에서 어쩌다 운이 나빠 발생하는 게 아니다. 기만적이고 불성실한 안전시스템에서 발생한다.

지난 총선 개표 방송을 보다가 불협화음처럼 귀에 거슬리던 한 마디가 있었다. “고졸 신화 양향자!” 그가 이미 2008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음에도 그는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가 ‘고졸 출신’으로 삼성에서 최초의 임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고졸 신화’의 불편함은 우선 학력주의를 소환해서지만, 신화 주인공의 행보와도 관련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해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수많은 성공 신화를 쓰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혀 신화적이지 않은 이야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담론은 상승하는 신화가 아니다. 하강하는 인간을 막을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연대의 매트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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