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 ㅣ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21대 총선은 여당과 그 비례위성정당의 압승으로 끝났으며,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국회를 낳았다. 그러나 이면에는 또 다른 승자가 있다. 바로 중산층이다.
실은 이번 총선만은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는 오래전부터 중산층이 과잉 대표되는 경향이 있었다. 선거제도의 중심이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이기에 정당들은 지역사회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집단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이는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 단체가 아니라 아파트 주민회나 대형 교회, 즉 지역 중산층 거점들이다. 각각 수구와 리버럴 성향인 양대 정당은 누가 더 이들의 환심을 사는지를 놓고 경쟁하며, 이에 따라 두 개의 ‘중산층 정당’이 정치를 양분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제6공화국에서 면면이 다져진 이런 특성 말고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게 있다. 중산층의 정치적 위상을 더욱 높인 최근의 역사적 경험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반발한 중산층의 이반은 이명박 정부 등장의 발판이 되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다른 것은 몰라도 부동산 시장 부양을 통해 중산층의 경제적 이익만큼은 확실히 챙겼다.
그러나 수구파 정부가 그 밖의 모든 영역에서 실패를 거듭하자 중산층의 거대한 정치적 이동이 다시 시작됐다. 어느덧 86세대가 주력이 된 중산층은 촛불항쟁을 거치며 리버럴 정당의 탄탄한 지지 기반으로 변신했다. 지난 10여년간 수구 정당과 리버럴 정당의 운명을 결정하다시피 한 이 진자운동 때문에 중산층은 이제 양대 정당에 거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닌 집단이 됐다.
그런데 중산층이 정치적 위상을 높인 이 시기에 이들의 경제사회적 위상 역시 유례없이 강화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산층 가운데 상위 중산층이 다른 계층에 대해 격차를 벌리며 기득권을 세습할 기반을 다졌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시기에 다른 국가들에서도 상위 중산층의 특권화, 세습화 경향이 강화됐다. 한국에서는 이 일반적 경향이 원조 강남 중산층에서 시작된 두 가지 성공 전략, 즉 부동산 투기와 자녀 입시 경쟁이 확산되면서 더욱 첨예하게 나타났다.
총선 몇 달 전에 발표된 <세습 중산층 사회>(생각의힘)에서 저자 조귀동은 이런 상위 중산층을 ‘세습 중산층’이라 명명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유독 불공정과 불평등에 숨 막혀 하는 이유가 상위 중산층의 세습화 경향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비판과 규탄뿐만 아니라 학습과 모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마치 강남 중산층의 부동산-자녀 입시 전략이 상위 중산층 전체의 표준이 됐듯이, 중산층의 다른 집단들은 상위 중산층의 성공을 뒤쫓으려 한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는 마치 중산층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다 투명인간인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만다.
이런 중산층의 이해관계와 문화가 과도하게 지배하는 국회는 늘 다음 두 가지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선 ‘세습 중산층’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부동산, 교육 구조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비록 여당이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에 신경 쓴다지만, 종합부동산세 신설 정도의 개혁을 기대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교육 문제의 고민은 정시 확대 논란 수준에서 맴돈다.
그러면서 중산층 이외 집단들의 생존이 걸린 긴급한 문제는 항상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기초연금의 불합리한 점을 고치려는 노력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매번 ‘다음’ 국회를 기약해야 할 처지가 돼버린다.
안타깝게도 21대 국회는 이런 양상이 가장 뻔뻔하게 전개되는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재벌과 ‘세습 중산층’의 눈치만 보면서 역사의 전진을 4년 더 늦추는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달리 말하면, 이는 불과 6석의 진보정당이 과거의 한계와 오류를 딛고 제 역량을 넘어서는 과제들에 도전해야 할 절박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