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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군 위안부 논쟁의 윤리를 생각한다 / 정유진

등록 2020-05-14 16:56수정 2020-05-15 15:10

정유진 ㅣ 전 도시샤대학 조교수(한일관계 전공)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님이 대구에서 단독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 인권운동가로서 느끼는 자부심, 수요집회의 한계와 교육장 건립에 거는 희망, 정신대와 위안부 구분의 중요성, 후원금 사용 및 정보 공유 문제,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애증 등 응답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 당선자, 더불어시민당 등은 피해자 기억 문제와 공천 관련 배후설을 언급하며, 실명이 적힌 영수증까지 공개하였다. 보수 언론과 야당은, 피해자의 논쟁적인 문제 제기를 비리 문제로 축소시켰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택적 듣기 방식이다. “이용당했다”는 호소, 피해자와 운동가의 관계에 대한 갈등을 보수 언론은 여당 흔들기에 이용한다. 운동단체는 ‘고령자’의 오해와 배후설로 폄훼하고, 진보 매체는 운동의 명분 약화를 걱정한다. 모두 팩트를 주장한다. 하지만 타인의 말, 특히 역사적 증언 듣기는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말을 선택하는, 당파적 행위다. 말에 대한 해석은 듣는 사람의 이해관계에 의해 재구성된다.

이번 회견의 ‘의미’는 피해자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간의 군 위안부 운동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데에 있다. 우리 사회는 “내가 여자의 몸으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이리 설움을 받아야 합니까”라는 피해자의 절규를 들으려 하지 않고, 피해자다운 피해자만을 요구하는 ‘2차 가해’를, 진실 공방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

고 김복동님도 생전에 이러한 점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토로한 적이 있다. “맨날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테레비고 신문이고 입이 아프도록 죽도록 말해 놓으면 그 말은 다 어디 가삐고 한두 마디 나오고 그저 ‘김복동 위안부’, ‘위안부 김복동 할매’… 이기 머, (내가) 위안부라고 선전하는 거밖에 더 되나 말이다. 안 그래?”(‘난 평생 정이라곤 줘본 적이 없어’, <한겨레> 2014년 2월22일치) 나는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촉발된 이용수님의 말이 고 김복동님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니다. 회견 내용은 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배경과 고정관념, 즉 사회운동을 둘러싼 논쟁의 곤란함과 반일 혹은 친일이라는 이분법을 깨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일본 우익을 핑계로 이 두 가지에 대한 개입을 미루어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야, 남성과 여성, 여성주의와 국가주의 등의 입장에 따라 피해자의 말은 선별되었다. “속을 만큼 속았다”는 주장은 이 맥락 안에 있다.

이번 사태가 중요한 이유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특정 단체와 개인에게 떠넘기거나, 피해자와 운동가의 이해는 충돌한다는 식의 상대주의에 기대어 도망치지 말자. 정부에 등록 신청을 하지 않은 피해자의 존재, 그들의 삶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운동의 ‘대의’가 훼손될까 우려하는 지적이 많다. 매우 중요한 얘기다. 다만, 사회운동은 지향하는 가치에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와 노력이지 그 자체로 시공을 초월한 올바름이 아니다. 일본을 의식한 운동의 대의를 앞세워, 우리 사회 내부의 다양성과 성장을 봉합하려는 것은 낡은 방식의 정치다.

말의 흔적은 사라지고, ‘친일세력 총공세’, ‘정의연 의혹 규명’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만이 난무할 때 피해자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은 말할 수 있을까. 존중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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