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애 ㅣ 국제뉴스팀장
“타노스가 옳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자 야생동물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보도에 누리꾼들이 쏟아낸 우스갯소리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역대 최강의 악당 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핑거 스냅) 한방으로 우주 생명체 절반이 사라진 뒤,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고래가 돌아오는 장면이 등장한 걸 떠올린 말이다.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카운티 보건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장 가동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영화 첫 장면이 떠올랐다. 마침 영화 속 ‘아이언맨’은 머스크를 모델로 한 인물. 타이탄 행성 전투 패배 뒤 외계 사이보그 네뷸라와 단둘이 살아남아 우주를 떠돌던 아이언맨은 절망 속에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한다. 영화와는 달리, 현실판 아이언맨은 타노스(코로나19)와의 전쟁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값비싼 깡통 취급을 받던 전기차를 대중화시키고, 민간 우주왕복선 시대를 열면서 머스크는 우리 시대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일단 해보겠다’고 그가 나선 덕분에 세상은 한 걸음 전진했다. 하지만 이번 공장 가동 강행도 혜안을 지닌 괴짜 천재의 배짱 있는 도전으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경제활동을 너무 빨리 재개했다간 “피할 수 있는 고통과 죽음”을 겪을 수도 있다(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입 아프게 반복할 필요까지도 없다. 고작 열흘(앨러미다 카운티는 다른 자동차 업체의 공장 재가동 시점인 18일부터 테슬라 생산 재개를 허용하려고 했단다!)을 못 참고 소송 불사, 공장 이전 엄포를 놓을 일인가. 그의 뜻대로 “파시스트적” 자택대피령에 항거하는 자유주의자의 소신 행보로 읽히기보단 ‘내 갈 길만 가면 된다’는 악동의 독선적 몽니 부리기로 비친다.
특히나 트위터를 통해 고지한 이 결정에선 프리몬트 공장 1만 직원과 그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마음이 읽히지 않아 실망스럽다. 일하러 나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텍사스나 네바다로 공장을 옮길 작정을 했을 때 직원들의 생계 대책은 미리 마련해뒀을까. 트위트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깊은 속내’를 헤아리지 못한 거라면 미안하지만, 애초에 직원들 안위는 우선순위에 없었던 게 아닌지 의심한다. 미국 자동차 업체 가운데 유독 테슬라에만 노조가 없다는 점, 지난해 9월 머스크가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등 노동관계법을 여러 차례 위반했다는 판결을 받았다는 점은 심증을 더한다.
“테슬라를 상장 폐지하겠다”는 등 여러 차례 ‘돌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그의 전력은, ‘내 회사,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그가 진심 그리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부추긴다. 이런 생각이 뭐 어떠냐 싶다면, 테슬라가 오롯이 머스크의 머릿속에서 탄생해 저 홀로 키운 회사가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기 바란다. 차량 설계와 생산·배송·서비스에 참여한 직원,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으로 밀어준 정부, 그리고 기꺼이 차를 사준 소비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테슬라도 없다.
영화 속 아이언맨은 타노스를 물리치기 위해, 캡틴 아메리카 등 다른 영웅들과 손을 맞잡는다. 생각이 달라 한때 적으로 싸웠던 이들이다. 왜?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한 마당에 뭘 더 보태나 싶지만 어딘가 있을지 모를, 또 다른 머스크들을 생각해 끄적였다. 타노스가 이기게 둘 순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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