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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놓치면 안될 ‘국가재정전략회의’의 의미 / 김태일

등록 2020-06-01 18:06수정 2020-06-02 09:34

김태일 ㅣ 고려대 정경대 학장·좋은예산센터 소장

지난 5월25일 청와대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은 경제 전시 상황이니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생소하다. 어쩌면 전시처럼 급박한 경제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회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는 않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시작된 이래 매년 이맘때 열리는 연례회의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재정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에 따라 재원을 배분하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회의 결과에 기초하여 내년도 예산안과 향후 5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이 만들어진다.

예년에는 회의 내용을 공개했다. 올해는 대통령 모두발언만 공개했을 뿐 본회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비공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민 지지가 필요할 텐데 그러려면 솔직하게 알리고 합의를 구하는 게 나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짐작이라도 해보자. 일단 내년도 예산부터 따져보자. 내년 예산 규모가 역대급으로 커질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모두발언처럼 지금의 경제 상황은 전시에 버금가고 올해의 추경 편성만으로는 극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분야별로는 고용·복지와 산업지원 예산 증대가 두드러질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 사회의 위기대응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위기에 처한 자영업과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내년의 국가채무 규모가 대폭 늘어나리라는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올해도 적자 폭이 크겠지만 내년에도 여건은 별반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5년의 재정운용계획은 어떨까? 이 5년은 위기 극복에 집중해야 할 2년, 그리고 이후의 정상화에 힘써야 할 3년으로 구분된다. 올해와 내년 예산이 큰 폭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대규모 재정지출로 채워질 것은 예측할 수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수긍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 3년이다. 위기 때 지출 확대는 명분이 확실하고 합의도 쉽다. 이후의 정상화는 다르다. 정상화의 제1목적은 재정건전성 회복이다. 그러려면 증세를 하거나 지출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어느 쪽도 쉬울 리 없다. 당연히 정치적으로는 인기 없다. 경제적으로도 자칫 살아나는 경기가 다시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충실한 계획과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정부로서는 잘해도 칭찬은커녕 욕먹기 십상이니 내키지 않는다.

매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개최하고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을 의무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어렵고 인기 없는 정책을 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재정전략회의에서 방향을 정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은 9월에 확정된다. 확정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위기 이후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꼭 포함되기를 바란다.

정상화 계획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실행력을 갖추려면 새로 출범한 21대 국회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년 뒤부터 해야 하는 정상화는 주로 차기 행정부가 담당한다. 이번 행정부가 세운 계획을 차기 행정부가 순순히 따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계획 집행을 담보할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만드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나는 이번 21대 국회가 해야 할 일 중 으뜸은 이 장치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처음 국회가 열린 계기가 행정부 재정운용 견제였음을 기억하자.

대통령 모두발언을 들으면서 두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하나는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때의 지출 확대는 돈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니다. 없지만 빚내서 하는 것이다. 평상시보다 더욱 아껴 써야 한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지출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더라도 효과적인 지출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사후에 투명하고 꼼꼼한 복기가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는 ‘누구를 위한 재정이며 무엇을 향한 재정인가?’라는 질문이 절박하다는 것이다. 행정부와 국회는 바뀌어도 국민의 삶은 계속된다. 자신들의 임기를 넘어 지속되는 국민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절박하게 고민하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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