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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플랫폼 통한 ‘온라인 매개노동’과 미디어

등록 2020-06-02 16:55수정 2020-06-03 14:05

[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플랫폼 노동’의 순화어는 ‘(온라인) 매개노동’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고용 계약을 맺지 않고, 모바일 앱, 누리소통망, 웹사이트 등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비정기적으로 일감을 받아 수행하는 노동”을 뜻한다. 미디어 업계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웹사이트를 통한 구인·구직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지상파 외주정책 출발 시기와 맞물려 있다.

방송사의 독과점 구조와 폐쇄적인 제작방식을 개선해 제작 주체를 다양화하고 프로그램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정책 취지까지는 좋았다. 준비 없이 시작한 외주정책은 생산 효율성 추구를 가속화하여 연출 촬영 보조, 편집 보조, 자료조사, 스크립터 등과 같은 보조적 비정규직 직군을 정당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는데, 이런 업무의 특징은 ‘급구’와 ‘상시채용’이라는 점이다. 방송사 경영 관점에서는 구인·구직 플랫폼이 유형화하고 고안한 ‘노동 유연화 모델’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현재도 주요 방송 뉴스와 유명 프로그램은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관행적으로 ‘보조’ 업무 성격의 매개노동을 상시 ‘급구’하고 있다. 급히 구했으나 지속가능하지 않은 초단기 업무이고, 단순 업무로 인식하다 보니 보수와 복리후생은 불명확하게 이루어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런 업무 형태는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

미디어 분야뿐 아니라 대부분의 디지털 플랫폼은 노동 단위를 생산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구획하고 조건화한다. 가령 ‘초보 가능’ ‘초단기 꿀알바’ ‘익일 입금’ ‘커플 동반 가능’ ‘주말 알바’ 등과 같은 문구는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의 단기 업무 구인 글에서 흔히 보는 문구다. 좋게 풀어 쓰면 업무 숙련도는 필요 없고 짧게는 반나절 또는 1일 정도 일하면 이튿날 입금되며 친구나 연인이 함께 오순도순 주말 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조건이다. 꽤 괜찮은 업무 같지만, 상세 노동조건을 꼭 읽어봐야 한다. ‘지옥의 알바’라고 불리는 상하차 분류작업인지, 방한복이 지급되지 않는 냉동고나 냉장실 포장 품질관리 업무인지, 식사비나 퇴근 차량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인지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의 내용은 같더라도 강도나 업무량은 균질하지 않다는 것이다. 온라인 주문량이 폭주하면 더 빨리, 더 많이 일 처리를 해야 한다. 시간제로 고용되기 때문에 “1㎏ 상자 50개 운반하고 퇴근”한다고 쓰여 있지 않다. 그날 데이터에 기록된 주문량에 의해 노동의 질과 강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e)커머스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우리나라도 ‘풀필먼트’ 체계를 도입하는 추세다. 상품의 보관, 입출고, 분류, 배송까지 고객 요구를 ‘만족스럽게 주문처리’(fulfill)하는 개념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저자 닉 서르닉의 지적대로 “이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집합적 협력과 정보를 소유한 새로운 계급이 정보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상품을 생산하지 않지만, 고객 거래 데이터를 독점해 활용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플랫폼 비즈니스다. 새벽 배송, 총알 배송, 당일 배송 등도 고객 데이터를 정교하게 활용하는 물류체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의 매개노동 단위 형태와 가치가 ‘시급’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불공정하다. 상품의 중량과 크기, 업무 공간의 특수성, 숙련도에 대한 고려 없이 과거 노동비용 기준으로 매개노동 형태와 조건이 거래되는 불합리를 따져야 한다. 많은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온라인 매개노동의 질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정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최선영 ㅣ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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