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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전시재정, 지출혁신으로 복원력 유지해야 / 김정훈

등록 2020-06-11 17:56수정 2020-06-12 02:39

김정훈 ㅣ 재정정책연구원장

전세계가 코로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전선의 의료진들은 지쳐가고 있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터가 없어지고 있다. 한국의 사망자가 미국,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경제적 피해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중 가장 적지만,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한국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실업자 급증으로 4월의 구직급여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5% 증가했다. 투자와 수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기업 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중국, 미국, 유럽이 모두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아 한국의 수출 전망이 어둡다.

실업이 증가하고 민간의 소비, 투자, 수출이 위축되면 경제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경제위기 시기에 정부가 부채를 일으켜서 소득 이전으로 가계 소비를 지원하고, 직접 지출을 통하여 시장의 위축을 억제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제 당연하게 들리지만, 사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케인스에 의해 탄생한, 마치 의학의 페니실린과 같은, 경제학의 위대한 유산이다. 국가채무에 대한 유명한 보수론자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기고문에서 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처라고 말했다. 경제위기 시기에는 “우리 모두가 케인지언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케인스 이후 재정적자 논쟁은 국가채무 논쟁으로 이어져 왔다. 보수 경제학자들은 국가채무가 “높을수록 나쁘다”라는 주장을 하고, 아예 “재정적자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재정적자의 순기능을 당연히 강조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통화이론은 “국가채무는 아무리 높아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전을 쓴 케인스가 위대한 이유는 그의 재정정책이 실용적이라는 점에 있다. 케인스 이후 경제정책을 이념과 모형으로 정형화하는 데 몰두해온 신고전파나 케인지언과 케인스가 다른 점이다. 케인스는 전쟁이 끝난 1940년대에 “경제위기로 늘어난 국가채무의 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채무에 대한 입장을 비관론자, 낙관론자, 그리고 현실론자로 나누면 케인스는 현실론자로 분류된다.

대공황만큼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이한 현시점에서 전시재정이 필요한 이유는 코로나 전쟁이 주는 피해가 경제를 구성하는 부문(민간 대 정부)과 가계(정규직 대 자영업·비정규직)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문(정부)과 가계(정규직)로부터 피해가 큰 부문(민간)과 가계(자영업·비정규직)로 재원이 이동해야 한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미래)로부터 경제위기 시점(현재)으로 재원이 이동해야 한다. 다만, 국가채무의 불필요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하여 재정지원을 피해 계층(자영업·비정규직)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국가채무 수준이 계속 높아질 수도 있다. 국가채무의 문제는 절대적 수준보다 계속 증가할 때 심각해진다. 만약 경제위기 때 증가한 정부 세출을 영구화할 경우 국가채무의 평탄화를 위하여 대대적인 증세(부가가치세, 소득세 인상)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증세(건강보험 및 국민연금)는 이미 제도화되어 중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5%, 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의 10%가 대기하고 있다. 증세를 전제로 세출을 늘리고 나서 나중에 증세를 막상 추진할 때 국민들이 동의할지 의문이 든다. 결론적으로 국가채무의 불필요한 상승을 막기 위하여 현시점에서도 불필요한 지출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이번 위기가 극복되고 나면 모든 재정지출을 원점에서 검토하는 과감한 지출 혁신을 통하여 국가채무의 증가 추세를 평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 위기가 모두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필요한 곳에 재정을 투입하고 이다음 경제위기에 대비하여 재정의 복원력을 유지한다면, 코로나 위기 이후 한국이 새로운 리더국으로 국격을 높이는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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