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담화 이후 북한이 연일 거친 대남 비난을 퍼붓고 있다. 북한 언론 보도를 보면, ‘철퇴로 대갈통을 부수겠다’ ‘죽탕쳐(짓이겨) 버리자’ ‘찢어 죽이자’ 같은 섬뜩한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지금은 수위를 조절하고 있으나 대미 비난도 격렬했다. 북한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을 “암탉”이라고 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사악한 검은 원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미친 병든 늙다리”라고 공격한 바 있다. 국제사회가 여성 혐오 표현, 인종차별 표현이라고 비판했으나 북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비난할 때 비속어·욕설 같은 원색적인 표현, 거친 구호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마구 내뱉은 말 같지만, 당시 선동선전의 목적에 맞게 치밀하게 계산하고 고른 것이다. 단순·원색·직설·공격적 언사로 적에 대한 원초적 적대감과 분노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최고존엄’과 북한 주민의 일체화를 노린다.
“구호가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구호의 목적은 선전선동이다. 이왕 선전과 선동을 하려면 화끈하게 하는 것이 좋다. 화끈함을 추구하다 보면 점점 더 강하고 험한 말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적개심을 고취시켜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결국 말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다.”(평안도 방언 연구자인 한성우 인하대 교수의 <문화어 수업>)
역대 대남 비난 중에서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은 최고존엄 관련 내용이다. 북한 인민은 최고존엄에 대한 충성심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난한 대북전단을 북한이 문제 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미 대화가 막혀 있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대남 비난이 체제 결속에도 활용된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라’고 하지만, 북한 생각은 다르다. 거칠게 큰소리로 외치지 않으면 아무도 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 본다. 북한의 막말은 약자의 블러핑(허세) 성격도 있다. 험악한 말 자체보다는 말을 둘러싼 상황을 봐야 한다.
권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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