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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유찬 “안정적인 재정 수요 뒷받침하려면 자산소득부터 증세 불가피”

등록 2020-06-17 04:59수정 2020-06-17 07:19

김회승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먼저 부동산 임대소득·주식 양도차익 등 과세 강화하고
법인세·근로소득세 높은 세율 적용 대상 더 늘려야
정부 지원받는 저소득층도 세금 내게 하자는 건 난센스

‘적극적 확장 재정’으로 코로나 대응은 글로벌 컨센서스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한번만…앞으론 경제 활성화 집중
우린 자본 수출국…채무 때문에 신용도 걱정 안 해도 돼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사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사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성장과 분배, 복지는 재정정책의 영역이지만, 조세가 뒷받침되어야 재정이 유지된다. ‘과세 포착점’을 잘 찾으면 위기 상황에서 국가 자원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과세가 가능하다.”

김유찬(63·홍익대 교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이른바 ‘증세론자’다. 통상의 국책연구기관장들이 ‘재정건전성’과 ‘균형재정’을 강조해온 것과 달리, 적극적인 확장 재정과 이를 뒷받침할 증세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금 올리자는 이야기는 쉽지 않은데,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그랬다. 지난 11일 <한겨레>와 만난 그는 “코로나 충격 이후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는 건 글로벌 컨센서스”라며 “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제때 풀지 않으면 경기 회복기에도 낮은 성장률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원 창립 멤버다. 1992년 설립 때부터 7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독일의 민간 회계법인에 취업해 2년간 근무했다. 다시 국내로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섰고, 첫 개방직 공무원에 도전해 2년간 국세청 납세지원국장으로 일했다. 학계와 민간·공공 영역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셈이다. 그가 말하는 과세 포착점은 단순하다. “경제 충격에도 여유가 있고 소득이 늘어난 곳”이다. 우선 주식 양도차익과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를 강화하고, 법인세와 근로소득세도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 구간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반기 코로나 경제 충격이 더 엄중해지면 추가적인 재정 투입에 대비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조세정책을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우리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에 턱걸이했다. 고용·소득 지표도 나빴다. 코로나 이후 재정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코로나 이전에도 저성장 극복을 위한 확장 재정이 기본 정책기조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년 대비 6~7% 정도의 재정 확장을 목표로 5년 단위 중기재정계획을 짰다. 코로나 이후는 재정의 대응 수준을 훨씬 더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세계 주요국이 경기 침체를 방어하기 위해 취약층과 기업 피해를 지원하는 데 공격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서로 만나 협의한 게 아니라, 주요국 사이에 ‘더는 통화금융 정책으론 안 된다. 재정밖에 방법이 없다’는 일종의 글로벌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이다.”

―우리도 1~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포함해 270조원 규모의 재정·금융 대책을 내놨다. 이 정도 재정 투입이면 충분하다고 보나?

“재정만 보면 3차 추경까지 금액으로 60조원 정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3%다. 엄밀하게 보면 재정지출 순증가는 그 절반 수준이다. 세입경정(세수 부족분 충당)과 지출조정(다른 예산에서 전용)을 빼면 30조원가량이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훨씬 신속하고 강력하게 재정·금융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 재정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7.8%, 일본은 8.7%, 독일과 이탈리아는 4% 수준이다. 최근 미국과 독일은 추가로 재정 지원책을 내놓았다.”

―2차 재난지원금 등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재정 확장은 신중한 게 좋다. 규모만 키운다고 좋은 건 아니다. 적기에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하다. 특히 올 하반기에도 코로나 위기 상황이 지속되거나 더 심각해지면 추가적인 재정 대책이 필요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 같은 보편적인 현금성 지원은 지난번처럼 해선 안 된다. 그 정도 액수(14조원)를 사용할 수 있다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한테는 더 충분히 하는 게 맞다. 지난번 재난지원금 지급 때는 선별적으로 지급 또는 환수를 할 준비 자체가 안 됐다. 하반기에도 경제 회복이 더뎌 다시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국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득 파악 인프라를 잘 만들어야 한다.”

―국가채무를 늘려 재정을 투입하는 데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의 선순환’을 이야기하지만, 일부에선 “착한 부채는 없다”며 반박한다.

“재정 역할론에는 역사적 경험과 역사적 반성이 깔려 있다. 2008년 유럽 재정·금융위기 때 충분한 재정을 투입하는 대신 긴축재정을 선택했다. 부채 전이를 막기 위한 상황 논리가 있었지만, 그리스·이탈리아 등은 위기 이후에도 경제를 회복하지 못하고 국가채무도 정상화하지 못했다. 결국 유럽중앙은행이 유동성을 풀어서 막긴 했지만, 위기 초기에 충분한 재정 지원을 하지 못해 잠재성장률이 크게 잠식되었다는 게 대체적인 사후 평가였다. 경기 침체기에 적극적인 재정 투입으로 성장률 하락을 최대한 방어하는 게 장기적인 경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확장 재정에 뒤따르는 문제가 나랏빚 증가다. 추경 재원도 대부분 국채로 조달한다. 3차 추경까지 계산하면 올해 국가채무 비율이 43.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9.2%)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증가 속도가 워낙 빠르다. 국가 신용도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도 있다.

“우선 국가채무는 규모보다 ‘채무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국가채무를 누가 갖고 있느냐는 거다. 오이시디 평균 국외 채권자 비중은 37.3%다. 우리는 12.5%에 불과하다. 국내 채권자가 88%라는 건 그만큼 채권 안정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자를 줘도 국내 이자소득으로 남는다. 일본도 90% 이상이 국내 채권자여서 별로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우리는 자본 수입국이 아니라 자본 수출국이다. 매년 국내총생산의 4~6%가량이 해외투자이고, 순대외자산이 30%에 이른다. 외환위기 이후 총저축 대비 국내 투자가 적어서 나타난 흐름이다. 과거처럼 외국에서 돈을 빌려오는 처지라면 모를까, 돈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국가채무 때문에 신용도를 걱정하는 건 난센스다. 실제 글로벌 투자회사들은 국내 연기금과 은행의 자산 규모가 커 국채 매입 여력이 충분하다며 국가채무 안정성을 1등급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환위기 트라우마 영향이 큰데, 지금의 우리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우려다.”

―국가채무를 무한정 늘릴 순 없다. 재정을 조달할 때 빚을 지지 않으면 결국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장기적인 재정 수요는 세금을 통해 안정적으로 조달해야 하고, 그래서 요즘 정치권은 물론 정부까지도 증세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현재 수준의 확장 재정이라면 그냥 채무로도 감당 가능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정 수요를 뒷받침하려면 증세가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세금은 경제에 안 좋다’, ‘불황기 증세는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이다. 현실에서의 세금은 수십 종류이고 하나하나가 과세 포착점이 다르다. 즉 과세 대상과 목표가 다르다. 우리 국민 5천만명의 경제 상황이 다르기에, 어디에 세금을 물리느냐가 중요하다. 적절한 과세 포착점을 잡으면 세수 증대뿐 아니라 경제 전체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즉, 경제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돈이 필요한 부분으로 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증세를 한다면 과세 포착점, 증세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둬야 하나?

“우선 별도 세목을 만들지 말고 자산 과세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 경기 침체로 대부분 소득이 줄었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 공공기관·대기업 사람들 별문제 없고, 소득 상위 20%는 지난 1분기에도 소득이 늘었다. 특히 오랜 금융 완화 기조 탓에 주식·부동산 등에서 자산소득이 커지고 있다. 돈은 많은데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는 안 하고 자산 시장으로 몰린다. 지금도 코로나 충격으로 실물경제는 침체인데 주식·부동산만 꿈틀거리지 않나. 예상됐던 바이고, 위험한 신호다. 경제 회복기엔 큰 부담이자 리스크가 된다. 이런 곳에 세금을 물리는 게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나? 생산적이지 않은 곳에 자원이 몰리는 걸 막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경제 원칙에도 부합하는 정책 방향이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사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사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말씀대로 세금은 개별적이다. 자산 과세를 강화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세목을 어떻게 늘릴 수 있나?

“일단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주식 투자는 주로 양도차익을 노리는데, 과세망이 너무 허술하다. 일부 대주주만 과세하고 소액주주는 비과세다. 대주주에게 부과하는 세율도 20%대에 불과하다. 부동산 임대소득도 문제다.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가 있지만 임대소득엔 무용지물이다. 일례로 임대소득을 사업소득으로 인정해 필요경비를 60%나 인정해준다. 한달 월세 200만원 받는데 120만원은 경비로 쓴 걸로 치고 나머지 80만원만 소득으로 친다. 현실과 맞지 않는다. 미국과 독일은 임대소득을 ‘저절로 얻은 소득’(패시브 인컴), 즉 불로소득으로 분류한다. 일해서 번 근로·사업 소득과 구별해 필요경비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허술한 과세망을 정상화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근로소득세와 법인세 세수 규모가 큰데, 현재 적정한 수준이라고 보나. 세법 개정 때마다 고소득층 ‘핀셋 증세’ 여부를 둘러싸고 늘 논란이 되었는데.

“굳이 세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과표 구간을 조정하면 된다. 현재 근로소득세 과표 구간은 8800만원 초과는 24%, 그 이하부터 4600만원까지 15% 세율을 적용한다. 예컨대 과표 상한선을 8000만원으로 내려 24% 세율 적용 대상을 조금 넓히는 것이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과표 구간을 조금씩 낮춰도 꽤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1억원 연봉자는 연간 50만원 정도 세금을 더 내는 수준이다. 이 정도로 여유가 없어지고 경제가 나빠지진 않는다.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는 중위소득과 최고세율 적용 구간 배율이 10배 이상이다. 쉽게 말하면, 최고세율은 높게 책정돼 있지만, 실제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이들은 극소수라는 얘기다. 북유럽 나라들은 이 배율이 1.5~2배, 일반적으로 5배 수준이다. 이들 나라에선 ‘웬만큼 벌면’ 최고세율 적용 대상이 되는 이들이 많다. 세율을 높일 게 아니라 최고세율 구간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법인세 최고세율(25%)은 연간 소득 3000억원 초과 기업에만 해당된다. 중간에 200억~3000억원은 22% 세율이다. 경비를 빼고 한해 소득이 200억원이면 큰 회사다. 개인사업자는 소득이 5억원만 넘으면 40%대 세율이 적용된다. 200억~3000억원 소득을 얻는 기업까지 최고세율(25%)을 적용하면 한해 2조~3조원 세수입이 는다.”

―국가의 의무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지속적인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보편 증세’가 필요하다고 보진 않나? 부가가치세(부가세)를 높이자는 주장도 나온다.

“보편 과세에 대한 오해가 있다. 보편 과세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모든 소득’에 과세하는 것이다. 부가세 같은 소비세는 모두가 내는 것이니 보편 과세이고, 소득세는 근로소득자 40%가량이 한푼도 내지 않으니 보편 과세가 아니라고 이해해선 곤란하다. 물론 현재의 소득세 면세점이 적절한지는 논쟁해볼 사안이다. 하지만 저소득 서민들도 적게나마 세금을 더 내자는 건 난센스다. 소득이 적다고 기초생계비나 근로장려금 등을 지원하면서, 다른 쪽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거두자는 건 경제적으로 실익이 없는 조세 행위다. 일각에서 개세주의를 거론하며 ‘조금씩이라도 다 내자’고 하는데, 그런 명분이라면 지금도 충분히 내고 있다. 그게 바로 부가세 등 소비세고, 지방세(주민세)다. 알다시피 소비세는 역진적이어서 저소득층에 불리한 세제다. 소득세 영역에서 실질적인 과세 강화가 이뤄지면 그다음에 소비세로 가는 게 맞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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