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광옥 ㅣ 변호사·나눔의 집 공익제보자 대리인
종. 선. 씨.
종선씨는 모닝을 탑니다. 모닝의 운전석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고급 맞춤 양복을 입은 듯 자신감 있고 편안해 보입니다. 그녀의 모닝은 수동입니다. 그리고 ‘최저 사양'입니다. 옵션 따윈 필요 없다 엔진만 다오 내가 몰아주마…. 그녀의 운전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짙은 갈색의 조그마한 얼굴에 신념인 듯 피어오른 기미가 참 이쁜 종선씨입니다.
사실 그녀의 매력은 모닝을 몰 때보다 봉고를 몰 때 더 빛이 납니다. 봉고 뒷좌석에 빈틈없이 쌀이며 부식이며, 건강식 그리고 성인용 기저귀까지 딱 후방거울이 보일 수 있을 정도만 남기고 가득 채워 그녀는 전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종선씨가 찾아뵈면 좋아들 하셨습니다. 가끔 ‘나눔의 집'이라고 쓰인 봉고가 근처에 세워져 있는 것조차 걱정스러워하는 할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주위의 아무도 당신이 ‘위안부'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행여 나눔의 집 봉고가 집 근처에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 말이 나올까 두려워했습니다. 종선씨는 자신을 반기지 않는 할머니들에게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 분들 집을 방문할 때 종선씨는 그 댁에서 아주 멀리 차를 주차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 민폐가 될까 차를 버리듯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세워두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카트에 쌀가마니와 김치, 뭐 이것저것을 가득 실어 할머니의 댁까지 가져다드렸습니다. 그녀가 수고하는 동안 나눔의 집 소장은 카트 하나 사주지 않았습니다. 종선씨는 “돈 쓰지 말라데…. 그래서 내가 하나 샀어요. 호호호, 조오기 뒤에 있어, 호호호” 합니다.
재가복지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7년을 했습니다. 그녀가 호련 스님의 도움을 받아 한 일입니다. 어르신들에게 연락을 하고 어르신들이 계신 곳을 찾고 필요한 것을 물어, 또 그것을 싣고 운전해서 실어다 드리고, 돌아와 안부를 묻는 일까지. 나눔의 집의 운영진 그 누구도 나눔의 집 큰스님들 누구도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마저도 돈을 쓴다며 그만하라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대단한 드라이버이지만 사실 간호조무사입니다. 지금까지 나눔의 집에 있었던 유일한 간호사입니다. 할머니들이 열분 넘게 계실 때도 간호사는 그녀 혼자였습니다. 종선씨가 수술을 받아 입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술 다음 날, 할머니 한분이 병원에 입원하시게 됐습니다. 나눔의 집에서는 할머니를 위한 간병인을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종선씨는 전날 수술받은 몸으로 할머니를 간병해야 했습니다. 수술날 단 하루만 ‘휴무'였습니다.
종선씨가 할머니들을 병원에만 모시고 다닌 것은 아닙니다. 곱게 차려입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스님들의 행사에도 모시고 갔었습니다. 할머니들은 스님들의 행사에 장식품처럼 앉아 있다가 스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들은 외출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들보다도 바깥바람 쐬기를 좋아합니다. 근처 퇴촌면에 나가서 맛난 것을 먹는 것도 좋아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하는 감성적인 분들입니다. 그러나 쉽게 외출할 수 없었습니다. 2018년 할머니들은 공식 행사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 딱 세번 외출했습니다. 퇴촌의 돼지갈비집에서 외식. 세번 모두 동일했습니다. 종선씨는 할머니들이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마음을 스님들 행사에 참여해서라도 달랠 수 있으니 어쨌든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스님들 옆에서 할머니들이 포즈를 취하고 온갖 언론사가 사진을 찍어대고 나면 멀찌감치 할머니들을 보고 있다가 다시 할머니들을 봉고로 모셔왔습니다. 잠시나마 할머니들에게 즐거운 드라이브를 시켜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종선씨는 얼마 전까지 연차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종선씨에게 그랬습니다. ‘사회복지시설에는 연차가 없어요.' 종선씨는 나눔의 집에서 근무한 지 20년입니다. 소장은 종선씨가 능력이 없어 승진시켜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종선씨가 불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잘못되었다 지적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눔의 집 문제가 터지자 ‘책임은 책임이고 헌신은 헌신이다. 그 대의와 헌신까지 부정되거나 폄훼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 분이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누구의 헌신이었습니까? 그 대의라는 것이 종선씨의 헌신을 가로챈 것은 아니었습니까? 반성이라도 할 수 있는 양심이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