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 방안’을 보자마자 케이(K)콘텐츠뱅크가 떠올랐다.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형 유튜브를 표방해 만든 온라인 비투비(B2B) 유통시스템으로 우리 방송 콘텐츠의 해외 마케팅, 관리, 유통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취지의 정책이었다. 유튜브 독식을 방어하고자 했던 이 플랫폼은 그러나, 한류 콘텐츠의 곳간은 되지 못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완성물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보유한 방송사와 저작권이 없는 콘텐츠 창작자의 ‘상생’ 조건으로서 파트너십 원칙이 없었다. 해외 유통을 희망하는 영상이 밀려들기는커녕 창작자는 저작권이 없어서 진입이 어려웠고, 방송사업자는 굳이 이 플랫폼에서 상생할 이유가 없었다. 저작권자, 창작자, 콘텐츠 이용자 연결 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 정책을 추진한 결과 플랫폼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현재 케이콘텐츠뱅크에는 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작지원 프로그램과 엠시엔(MCN·다중채널네트워크)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다년간 운영관리비와 제작지원비 예산을 투입할 만큼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유튜브 방어가 정책 전략이었는데, 가령 지원금 수혜자가 유튜버로 왕성한 활동을 할 경우 이를 성과로 봐야 할지도 모호하다.
이번 ‘발전 방안’에서도 이런 맥락의 모순이 발견된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 기업 최소 5개를 목표로 지원”한다는 대목과 “플랫폼 차별화, 대형화 지원”에서 아연실색했다. 플랫폼은 이용자의 관심과 선택의 크기에 의해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지 대형화의 결과로 플랫폼 연결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형화라는 규모의 관점에서 정책을 펼칠 경우, 소규모 스타트업이나 도전적인 벤처 플랫폼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에겐 엠엔캐스트, 판도라티브이, 엠군 등 유튜브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선도적 동영상 플랫폼이 여럿 존재했었다.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매개로 큰 인기를 누렸던 이들은 왜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지 못했을까. 아이티(IT) 칼럼니스트 김인성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터넷 망 사용료로 인해 ‘캐즘’(chasm)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시장 개척을 막 시작한 벤처 기업은 범용 서비스 개발 전까지 대형화 사업비용을 최소화해야 안정적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데, 이들은 사업 초기 매출이익의 대부분을 망 사용료로 지불해야 했다. 비용 감당이 안 되자 피투피(P2P) 전송을 택했고, 그 결과 ‘이용자 만족’이라는 핵심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 컴퓨터 속도가 느려지고 에러가 빈번히 발생하자 이용자들은 유튜브 같은 편의성 높은 플랫폼으로 이동한 것이다.
하나 더. “젊은 창작자와 1인 미디어를 집중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의아하다. 가뜩이나 디지털 격차에 대한 우려가 큰데, 젊은 세대와 1인에 한정해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1인 제작자보다 소규모 협업 제작이 실질적으로 더 많다. ‘개인 미디어’라고 칭해야 정책 적용에 혼선이 없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가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이다. 두 플랫폼은 대형화된 지금도 이용자 편의성과 연결성에 공을 들여 수익모델을 개선해가고 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규모 중심의 대항마 프레임으로 접근하기보다 플랫폼과 콘텐츠 이용자 관점에서 정책이 재검토되길 바라는 건 너무 늦은 것인가.
최선영 ㅣ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