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때 정보통신부 장관에 지명된 이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의 진대제씨였다. 진 장관은 삼성전자 주식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다량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큰 논란을 빚었다. 해당 주식과 직무 간 연관성 탓에 장관 업무 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기 딱 좋은 사례였다.
진 장관을 둘러싼 당시의 논란에 자극을 받은 여야는 2004년 총선에서 잇따라 ‘주식 백지신탁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2005년 공직자윤리법에 반영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과 장·차관을 포함한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4급 이상 공직자들은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매각하거나 수탁기관(금융회사)에 맡겨야 한다.
맡겨진 주식은 60일 안에 반드시 팔게 돼 있고, 처분하기 어려울 때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30일씩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기를 마쳐도 원래 주식으로 돌려받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백지신탁은 시장에 내다판다는 것과 같은 뜻인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이던 2006년 보유 주식을 처분한 것도 이 제도 때문이었다.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주식을 팔아야 할 처지에 빠져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주식 백지신탁제가 도입될 즈음 고위공직자의 ‘부동산’도 백지신탁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에서 나왔고 이는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2005년 6월 지병문 열린우리당 의원이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법안은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때 본인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이 소유한 부동산에 대해 ‘실소유’임을 해명하지 못하면 별도 국가기구에 처분을 맡기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백지신탁된 부동산은 60일 안에 매각해 취득 당시 가액에 법정 이자를 더한 금액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고에 넣도록 했다. 필수 부동산(주거용 1주택 등)을 빼고는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 법안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무산됐다.
부동산 백지신탁제 이슈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정치권 안팎에서 꾸준히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 한나라당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7년 토론회에서 이 제도 도입에 동의한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혼돈 속에서 백지신탁제 도입 주장이 다시 쏟아지고 있다. 대선 후보 반열에 들어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이어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김두관, 미래통합당 김기현 의원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주장이 힘을 얻어 제도 도입으로 이어진다면 최대 공헌자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될 것 같다. 노 실장이 지난해 12월 청와대 참모진에 다주택 해소를 권고해 놓고선 정작 본인부터 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맹비난을 받았고, 주택정책 신뢰 상실과 백지신탁제 주장의 도화선이 됐으니 말이다.
일찌감치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앞장서 제기해온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는 고위 공직 취임 후 업무 처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 뿐 아니라 공직 인재 풀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청문회나 재산 공개 때 합법적인 재산 형성이었음에도 과도하게 비난을 받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 제도의 현실화 여부를 떠나 공직과 사업은 병행할 수 없다는 기초 윤리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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