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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영방송의 불공정한 ‘지식재산권 장사’

등록 2020-07-28 17:25수정 2020-07-29 02:36

[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005년 방송된 <한국방송>(KBS) <인간극장>의 ‘안녕, 유리공주’ 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왜 갑자기 이 에피소드가 인기를 끌까 검색해보니 한국방송의 ‘뭉클티브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전편이 올라와 있었다. 충격이었다. 이 출연자에게 허락은 받았을까. 그럴 리 만무한 게 주인공은 이미 생을 달리했다. 공영방송이 사망한 출연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뭉클함’을 위해 ‘재활용’해도 되나. 출연 당시 초상권 계약을 어떻게 맺었길래 사후에도 영원히 재생되고 있는 걸까.

이는 윤리적으로 법리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해당 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뭉클함은커녕 출연자 가족에 대한 비난과 억측이 많아 그 수위가 위험한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도 한국방송은 “지나친 표현은 출연자와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 삭제될 수 있다.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댓글을 부탁드린다”는 글을 게시할 뿐이다. 댓글이 아닌 영상 삭제를 해야 함에도 돈벌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공영성을 저버린 것이다.

자회사 재방송 채널도 문제다. 여기에서도 과거 영상이 영원히 방송되는 건 마찬가지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인간극장>은 100% 독립제작사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방송창작물로서 저작권자에게 공정하게 사용료가 지급되고 있을까. 놀랍게도 독립제작사에는 저작권이 없다. 프로듀서나 자료조사원, 카메라맨 등 창작자도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거의 유일하게 방송사와 협상을 통해 협회원의 재방송 저작권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극장>은 10여년간 회당 1천만원 좀 넘는 제작비를 유지하다 최근 약 5% 인상된 걸로 알려졌는데, 고작 방영권에 준하는 제작비를 투입하고선 저작권 전부를 한국방송이 갖는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 계약 관행은 온라인 스트리밍 방송 환경에서 명백한 불공정 행위다.

공영방송의 위기는 핵심 자산인 콘텐츠 아이피(IP·지식재산권)에 대한 무지를 혁신하지 않고 위기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데 있다. 방송사는 대외적으로는 창작자와 ‘상생’해 콘텐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곤 하지만, 실상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특집 하이라이트 재방송을 기획하고, ‘큐레이션’이 새로운 수익창출원이라며 방송 전편을 통째로 온라인에 올린다. 방송사 조직 내부에서 마른행주 쥐어짜듯 제작비를 깎고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면 ‘성과’로 인정받는 관행까지 있다. 제작비 삭감 꼼수와 불공정 계약 관행을 고수하기 때문에 <인간극장> <한국인의 밥상> 등 핵심 프로그램의 실제 제작 편수는 몇년째 줄어드는 추세다. 공영방송으로서 이윤 추구보다 창작자군을 키우고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푼돈의 제작비를 대고 반공영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달 초 한국방송이 발표한 경영혁신안 기사를 보니 공영방송으로서 가치 지향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조직이 살아남는 일’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 같다. 창작자와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 혁신 의지가 있긴 한지 모르겠다. 굳이 공영방송이 아니더라도 공영성 높은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됐다. 규제와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하기 전에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방송제작진이 왜 새로운 플랫폼에서 기회를 찾으려 하는지, 왜 공영방송을 피하려 하는지 직시하기 바란다.

최선영 ㅣ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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