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내린 폭우로 전북 남원시 대강면에서 하천이 범람하면서 축사가 침수되자 소들이 탈출하고 있다. 남원에는 이날 하루 300㎜가 넘는 장대비가 내렸다. 연합뉴스
이봉현 |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수마가 온 강토를 할퀴었다. 올 장마는 여러모로 ‘역대급’이었다. 기상 전문가는 기후변화가 원인이라 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염병 코로나19의 대유행,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대륙을 불태운 오스트레일리아 산불도 기후변화와 관련 있는 재해라는 진단이 나왔다.
기후변화는 날씨, 기온, 바닷물 온도가 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때, 사람도 문명도 그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묵시록’이 기후변화의 경고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노력해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30년이라고 경고한다. 살던 대로 살 것인지, 지금이라도 삶을 바꿀 것인지가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이다.
기후변화는 언론에도 큰 도전을 안겨준다. 환경을 감시하고, 행복한 미래를 그려내는 공론장 역할이 어느 곳보다 절실한 분야가 바로 기후변화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2~3년 사이 기후변화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2018년 10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온다고 경고한 것이 분수령이 됐다. 세계 주요 언론이 협업에 나선 것은 상징적이다. 지난해 4월 결성된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라는 협력 프로젝트에는<블룸버그>,<알자지라>,<아사히신문> 등 세계 470여개 신문, 방송, 통신, 잡지사가 참여했다. ‘클라이밋 데스크’라는 프로젝트에는 <가디언>, <허핑턴포스트> 등 18개 온∙오프라인 매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웹사이트에 기사와 최신 데이터, 기후변화 보도 기법 등을 모아서 공유한다. 협업을 하는 이유는 세계적이고 장기적인 변화여서 체감하기 어려운 기후변화를 독자가 자기 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려는 것이다.
국내 언론의 변화도 눈에 띈다. <한겨레>는 올 4월 국내 종합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편집국에 기후변화팀을 신설했다. 종전과 다른 의지와 관심으로 이 문제를 취재하고 보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5월에는 지령 1만호 특집으로 ‘기후변화와 감염병, 자연의 반격’이란 기획을 내보냈다. 한겨레는 또 최근 여론 면 필진을 개편하면서 바람, 햇빛, 습지, 비를 주제로 돌아가며 연재하는 날씨 칼럼을 신설했다. 7월 말부터는 온실가스 수치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그래프를 매주 싣고 있다. <경향신문>도 기후변화를 적극적으로 다루는데, 녹색연합과 공동으로 기후변화가 해녀, 농민, 양봉업자 등 개인의 구체적 삶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보여주는 ‘기후변화의 증인들’ 이란 기획물을 6월 말부터 연재하기도 했다.
사실 기후변화는 한겨레 같은 진보 언론이 대표 상품화하기 딱 좋은 주제이다. 기후변화는 무한 생산과 소비, 불평등 확대를 특징으로 하는 현 자본주의 경제∙사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명확히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잇따라 약속하는 2050년까지 ‘탄소 제로’(배출과 흡수량을 동일하게 해 전체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를 달성하려면 성장과 분배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환경과 사회, 그리고 경제가 공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적정하게 생산하고, 기본소득과 일자리 나누기 등으로 잘 분배하는 것이 기후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습이다.
전기차가 빠르게 화석연료 자동차를 대체할 것이다. 에너지의 중심도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이미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 산업에서 몇십년 안에 수천조원의 ‘좌초자산’이 발생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애플이 전 세계 부품 업체에 100%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요구하고, 세계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석탄 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후변화는 무역장벽이자, 산업경쟁력의 요체가 될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산업계의 인식과 대응은 소극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린뉴딜을 표방하면서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는 제시하지 않았으며, 한국전력은 최근에도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결정했다.
이런 점에서 기후변화 보도는 기상, 환경 이슈에 머물지 말고 정치, 경제,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꾀하는 새 진보의 핵심 의제로 나아가야 한다. 한겨레도 이에 걸맞은 인식, 인력 및 조직의 체제를 차츰 갖추어가야 한다. 기후변화를 대표적 의제로 삼아 독자와 소통하는 영국 <가디언>의 노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올 1월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바꾸어 쓰고, 화석연료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가디언은 “기후위기와 연관된 문제들은 체계적이며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요구한다”며 “우리는 미래세대 편에 서고, 인류 보존을 위해 두려움 없이 나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지속해서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대응을 언론사의 중대한 사회적 책무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독자의 지지와 후원을 받는 선순환 모델을 구축해가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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