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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공직 기준 1주택’ 조롱만 하고 말 건가 / 김영배

등록 2020-08-20 16:14수정 2020-08-21 02:40

20일 종로구 경실련에서 '수도권 기초단체장 부동산 재산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종로구 경실련에서 '수도권 기초단체장 부동산 재산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원래 두 채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한 채는 매매 계약을 체결해 처분 중이다.”

참모진 개편 때 나온 청와대 쪽의 설명에서 ‘다주택 해소’ 약속보다는 ‘다주택자였다’는 사실에 먼저 신경이 쓰였다.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고위 공직과 일반 서민층 사이의 거리가 한참 멀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 아닐까 싶었다.

지금껏 ‘공무원들이 사익을 염두에 두고 정책 결정을 한다’는 식의 의구심에 나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 편이었다. 같은 공직에 있다 해도 사회·경제적 처지와 여건이 다 다를 테고, 정부 정책이 몇몇에 의해 좌우될 만큼 호락호락할 리 없을 것이라 여겼다.

지금은? 좀 달리 봐야 할 정도로 그동안에 사정이 많이 변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박봉의, 가난한 공직자’라는 표현이 더는 현실감을 띠지 않게 된 것부터 고위 공직의 입지가 서민층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정황 아닐까. 공직자라도 가깝게 지내는 이들의 인식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란 의심은 합리적이다.

청와대 참모진의 다주택 논란 뒤 고위 공직 후보에서 다주택자를 빼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신임 참모진은 물론 새 국세청장 후보, 신임 차관들 인선 때도 다주택 해소를 유력한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위 공직 인선 잣대로 마땅치 않다고만 하기엔 집 문제의 폭발력이 너무 커져 버렸다. 부동산이 불평등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지경이다. 한국의 토지 지니계수(0~1)가 1960년 0.3에서 2018년 기준 0.8을 넘었다는 사실은 심각한 불평등 상태를 보여주는 한 예다.

이렇게 된 마당이라면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 억제를 도덕적 결단에 맡겨놓을 일이 아니라 아예 제도화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마침 국회에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지난달 대표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다. 국무위원·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는 실거주 1주택 외 부동산을 팔거나 백지 상태로 신탁해 처분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신 의원은 “연이은 대책에도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것은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며 “고위 공직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 참모진의 다주택 해소 과정서 벌어진 소동이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에는 좋은 계기라 할 수 있다. 주식백지신탁제는 2005년에 도입·시행돼 15년의 역사를 쌓고 있다. 주식백지신탁제 도입 즈음 부동산신탁제 법안도 발의됐다. 무산되긴 했지만, 당시 여야 모두 찬성 뜻을 밝힐 정도로 공감대를 이룬 터였다. 부동산신탁제는 미국도 시행하지 않는다는 식의 반론은 무의미하다. 두 나라의 부동산 문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부동산신탁제 도입에는 이재명 경기지사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달 온라인 기자회견 때 경기도 4급 이상 공무원에 대해 실거주 외 주택을 처분하도록 권고하면서 부동산백지신탁제 입법 실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부동산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부동산 정책 결정에 관여하게 되면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이 지사 쪽은 9월 8일 관련 토론회를 열 계획을 세워놓는 등 여론 확산을 꾀하고 있다.

담당 공무원들을 위해서라도 신탁제를 도입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 비중이 높은 게 현실이고 여기서 비롯되는 의심은 정책의 신뢰도와 추진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릴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심 없이 일을 처리했다 하더라도 정책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마다 사익과 얽혔다는 불신을 사게 되고 이는 불필요한 소모전으로 이어지기 쉽다.

공직 임명 때 ‘능력’보다 ‘다주택 여부’만 본다며 조롱을 하고 말 일이 아니다. 어느 정당이든 집권 뒤 주기적으로 폭발하는 부동산 문제를 피하기 어렵게 돼 있다. 고위 공직의 다주택에 얽힌 말썽의 연결고리만이라도 제도적으로 끊어줄 필요가 있다.

부동산신탁제가 만능열쇠는 아니어도 인사청문회 때마다 투기니, 위장전입이니 따위로 공방을 벌이며 헛심을 쓰고 공직 후보 당사자가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불상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의 기본인 신뢰를 얻는 출발점이란 의미도 있고, 1주택 후보를 찾는 방식보다 인재풀을 넓히는 길이기도 하다. 고위 공직의 다주택 소동으로 생겨난 동력을 기회로 활용할 일이다.

김영배 ㅣ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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