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식 ㅣ 경상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코로나19 때문에 모두들 힘든 와중에 정부가 발표한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두고 의사들, 특히 전공의들까지 파업에 나서서 사람들의 불안지수를 높이고 있다. 이 정책의 핵심 목표는 필수의료서비스 공급이 부족한 지역, 특히 비수도권 지역과, 꼭 필요하지만 전공자가 적은 외과, 응급의학과 등의 전공 분야에서 일할 의사를 양성하고 공급하는 것이다.
예방의학자로서 나는 이 정책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의사 정원 확대와 지역의사 확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어떻게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 세부 방안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을뿐더러, 수도권 소규모 사립 의대 중심으로 이루어질 정원 확대와 의사과학자 양성안 등으로는 원래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여겨져서 과연 원하는 정책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매우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항상 민감한 주제였던 의사 정원 확대를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의사 파업 사태에 빌미를 준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의사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제시한 대로 일단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의사들을 포함한 관련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새롭게 다듬어 나가기를 바란다.
지방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필자는 이러한 논의의 일환으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확대되는 의과대학 정원을 지역 출신 전형으로 해서 모두 지방의대에 배정하자는 제안이다.
이 제안과 관련하여 개인적 경험을 조금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방 출신인 나는 1985년에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의 국립의대에 입학해서 1991년에 졸업했다.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내가 오로지 학교 성적만으로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에 시행되었던 졸업정원제와 과외금지 조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의 예방의학교실에서 전공의 수련을 하였고, 지방 소도시에서 2년 반 동안 중소병원의 봉직의로 근무한 뒤 또 다른 지방 국립의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내가 사는 크지 않은 지방 도시에서 두 아이를 키웠고, 아들은 이곳에서, 그리고 딸은 다른 지역의 지방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게으른 탓에 그리 훌륭한 학자가 되지는 못했고, 코로나 때문에 제법 알려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별로 인기 없는 기초과목인 예방의학을 전공한 탓에 큰 재산을 모으거나 하지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지금의 삶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아니, 사실은 지금의 삶에 감사한다고 해야 더 옳겠다.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예방의학자로 살기 때문에 탐색하고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당장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지역의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그 지역에 있는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고 지역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은 다음 지역의 의료기관에서 일하게 된다면, 수도권 출신으로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 그리고 의무복무기간만을 연고 없는 지역에서 채우는 의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역에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지역 출신 의사들은 굳이 수도권으로 가서 개업하거나 취직해야 할 동기가 없고 오랫동안 쌓아온 자신의 물질적, 정서적인 자산이 모두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모두 공공 분야에서 근무하지는 않는다 해도 대부분은 자기 지역에서 의사로 정착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일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것이다.
혹시 이 대목에서 갸웃해지신다면, 그렇다. 이 방안은 지역과 지방 의대에 큰 특혜를 주는 일이 맞다. 법 개정을 비롯한 현실적인 장벽도 있고, 형식 논리로만 보면 수도권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특혜가 정부 정책 목표가 의도한 대로 지역 의사를 양성하여 부족한 의료 서비스의 공백을 메우는 데 훨씬 유용하고, 국가 전체로도 더 큰 편익을 가져오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