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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의료계가 바라는 절차적 민주성 / 정백근

등록 2020-09-10 15:59수정 2020-09-11 12:00

정백근 l 경상대학교 의대 교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어느 정도는 해결되는 양상이다. 불씨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하여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가 힘을 합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 의료계가 ‘잘못된 4대 정책’으로 규정한 정책 중 특히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은 우리나라의 취약한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고 지역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여러 전략 중 하나이며 이와 관련해서는 의료계도 원칙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에 서로가 합의할 여지가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의료계가 투쟁의 근거로 제기한 정책 내용과는 별개로 애초 가장 문제로 삼았던 것은 정부가 이들 정책을 의료계와의 대화 및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의료계가 해당 정책 결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당사자이지만 의사 형성 과정에서 배제되며 정책의 민주적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구성될 협의체에서는 의료계를 주요한 의사결정 주체로 설정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의 핵심 내용은 의사가 부족한 의료취약지의 중증·필수 의료분야에 의무적으로 종사할 인재를 ‘지역의사제’를 통해서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정책 결정의 영향을 받는 가장 중요한 핵심 관계자는 의사가 부족해서 고통받았던 지역의 주민들, 응급 및 외상과 같은 중증·필수 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해 불행한 경험을 한 사람들, 그런 고통과 불행을 가까이서 함께한 사람들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2.4명으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4명)의 71%에 불과하며, 대도시를 제외한 도 지역은 특히 부족해 경상북도는 1.4명밖에 되지 않는다. 지역 간 의사 분포의 불평등은 지역 간 건강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데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인구 10만명당 치료 가능한 사망률은 2015년 현재 서울 강남구가 29.6명인 데 반해서 경북 영양군은 107.8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와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하여 공공의료 강화 및 지역 의료격차 해소 정책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면 의사가 부족한 지역주민들과 중증·필수 의료 이용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 대표들이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의료계가 원했던 민주적 정통성이 완전히 확보된 정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추후 구성될 협의체에서는 4대 정책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이 폭넓게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속에서 의료계가 요구했던 사항들도 진지하게 논의하고 대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촉발된 계기도 그러하듯 이 속에서 나온 대안들은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고 지역 의료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의료 이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의사 인력의 절대적 부족을 해결해야 하는데 의대 정원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올해 경상남도에서는 오랫동안 의료의 취약성으로 고통받았던 서부경남 주민들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지역의 공공보건의료 확충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는 지난 7월21일 도지사에게 전달되었는데 여기엔 공공병원 신축 계획이 들어 있다. 도지사가 이를 추진할 것을 약속한 만큼 서부경남의 많은 주민들이 공공병원 신축 결정을 환영하고 있지만 동시에 과연 의사들을 확보할 수 있는가와 관련해서 우려가 깊다. 부디 협의체의 결정이 서부경남 주민들의 이런 우려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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