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재단 뉴스 빅데이터시스템인 빅카인즈의 검색창에 ‘20대 여성’을 넣었더니 20개 열쇳말 가운데 19개 연관어가 성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나왔다.
이정연 ㅣ 젠더팀장
지난 24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연 특별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주제는 ‘20대 여성과 미디어: 이해와 소통을 위한 시선전’. 두달 전 참석 요청을 받았는데, 그때 학회 쪽에서 세미나를 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대 여성이 주요한 정치·경제·사회적 주체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반가웠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채 불편한 날들을 보내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내 곁의 20대 여성들은 그 어느 세대, 성별이 그러하듯 하나 또는 둘의 모습만을 띠지 않는다. 단면적이지 않다. 요구와 욕망, 주장은 다면적이다. 그러나 단면적이다. 한국 언론 속의 20대 여성들은, 단면적이다. 토론을 준비하며 자료를 찾았다. 난관에 바로 부닥쳤다. 20대 여성이 한국 언론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가를 다룬 논문이나 통계 자료를 찾았지만,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직접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시스템인 빅카인즈의 검색창에 ‘20대 여성’을 넣었다. 2016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종합일간지를 비롯한 18개 언론사의 기사 속 ‘20대 여성’이 어떤 연관어와 함께 등장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연관성이 높은 열쇳말 20개를 살펴보니, 모든 연관어가 ‘성범죄’와 관련 있었다. 연관성 가장 높은 단어가 ‘성폭행’, 그다음이 ‘성추행’이었다. 20개 열쇳말 가운데 19개 연관어가 성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20대 여성은 언론 속에서 자주 ‘피해자’로 등장하고, 그 외의 모습은 찾기가 어렵다.
“한 주간지에서 ‘20대 남성 현상’을 주제로 삼은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지만, 바로 궁금해졌다. 나는? 왜 나와 내 친구인 20대 여성들은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특이한 현상의 주인공이 아닌 건가? 대체로 ‘○○ 현상’은 언론이 이름 지어 ‘○○ 현상’이 되던 것 아니던가?” 27살의 여성인 친구에게 20대 여성과 언론 속 재현에 대한 생각을 묻자 나에게 다시 물었다. 왜 당신들, 기자들은 궁금하게 여기지 않느냐고. 답을 곧장 할 수 없었고, 불편한 마음이 남았다. 그리고 얼마 뒤 ‘올해 20대 여성 자살시도자가 크게 늘었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성범죄 피해를 당하거나, 자살을 시도하지 않으면 뉴스에 보이지 않는 뉴스 밖의 여성을 떠올렸다. 뉴스라는 기록 속 삭제된 다른 존재들을 연이어 떠올린다.
“젠더 데이터 공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것이 대개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 수천년 동안 존재해 온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일종의 무념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운동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성 편향의 데이터에 바탕을 둔 이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는가를 책에서 이야기한다.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도 이런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기본값을 ‘남성’으로 삼는 다른 분야와 다를 바 없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남성일 때는 그냥 이름만 쓰지만, 성별 정보가 중요하지 않을 때도 굳이 ‘여’ 또는 ‘여○○’라고 쓰는 한국 매체가 여전히 많다. 사소한 표현뿐만 아니라 전반의 접근이 그렇다. 심각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엄청나게 뛰어난 성취를 한 1호가 아니면 여자는 기사에 등장하기 어렵다.
다행스러운 건 여성이 다른 여성을 이해하고, 기억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거다. 이해가 연대로 이어지리란 기대를 갖게 된다. ‘20대 여성과 미디어’ 특별세미나에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여성 교수’들이 모여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인 ‘20대 여성’을 이해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작은 희망을 찾았다. ‘기자들이여 왜 20대 여성 시민을 다룬 입체적인 기사를 내놓지 않는가’라고 질타하기보다, 이제 그 질문을 여성인 나 자신에게 던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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