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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남의 나라의, 그러나 인류사적 선거 / 김준형

등록 2020-11-02 04:59수정 2020-11-02 07:45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30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쓰고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제너럴 미첼 공항 격납고 안에서 유세하고 있다. 밀워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30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쓰고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제너럴 미첼 공항 격납고 안에서 유세하고 있다. 밀워키 로이터/연합뉴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미국 대선이 이번 주로 다가왔다. 거의 1년이나 걸리는 장기전인데다, 코로나 팬데믹의 혼란과 함께 달려온 시간이라 목전의 선거가 비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우리가 남의 나라 선거에 관심을 넘어 초조함까지 느껴야 하느냐는 주변의 반응을 꽤 접한다. 미국은 하락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이고, 국제정치경제의 규칙을 만들고 또 강제할 힘과 지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평범하지만 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격변의 한가운데서 미국인들의 선택에 따라 많은 것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사는 시대가 변화의 중심이고, 그래서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으로도 대격변의 시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이어온 미국 패권 질서는 정복을 일삼던 착취적인 유럽의 제국주의와 자칭 타칭 다르다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물론 이면에는 더 세련된 착취와 훨씬 침투적인 ‘이익 챙기기’가 깔려 있겠으나, 대다수 국가가 어느 정도의 자발성으로 민주주의, 시장경제, 팍스아메리카나의 질서를 기본 규범으로 수용해왔다.

그러나 절정은 곧 하락의 시작이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압도적 일극 체제를 완성했던 미국은 이후 10년의 전성기를 보낸 후 점차 균열을 드러냈다.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2016년 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의 당선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국제협력의 대세가 꺾였다. 그리고 2019년 코로나는 급소를 강타했다. 트럼프의 미국은 자기가 만든 질서를 외면하고 규칙을 어겼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보건기구(WHO)를 무력화시켰고, 유엔은 개점휴업이다. 금융위기 당시 G20으로 함께 위기에 대처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각자도생 속에 상호 책임전가에 여념이 없는 G0의 리더십 부재가 이어진다. ‘모두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은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일깨우지만, 세계는 오히려 파편화의 길을 걷고 있다.

미 대선이 한국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불문가지다. 동맹을 위해 바이든이 나은 선택이고, 북한 문제는 트럼프라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전자는 크게 이견이 없으나 후자는 두 사람 모두 장단점이 있다. 트럼프는 대북정책을 미국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상당한 정도로 끌어올렸고, 재선되면 성과를 이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지난 2년의 실질 성과 부재의 이벤트 위주의 국면이 계속될 수도 있다. 바이든은 오바마 8년의 전략적 인내가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대북정책을 새로 입안하고 대북라인을 구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은 마이너스 요소지만, 캠프에 포진한 전문가들이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일단 막은 후 비핵화로 가는 실용적 접근을 지지하는 것은 플러스 요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문제에 관해서 한국이 운전석이라고 인정했던 1998년 클린턴처럼 민주당 정부는 한국의 충고에 귀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누가 당선되든 우리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명분의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미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지렛대를 만들어 미국과도 국익을 위한 밀당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미 관계는 깊어져야 하지만, 한-미 군사동맹은 약화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낫다’는 말이나, ‘한-미 동맹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익을 앞설 수 없다’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언급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자주성을 갖춘다면 미 대선 결과에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남의 나라 선거에 초조함을 느낀다고 비판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중요하다.

4년 전 세계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이 빗나갔었다. 그러나 전문가는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어느 편이 상대적으로 더 가능성이 있는가를 예측할 뿐이다. 물론, 미국 바닥 정서와 ‘샤이 트럼프’의 존재를 인지해내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돌발변수를 너무 중시해서 종합적 예측을 다르게 할 수는 없다. 필자는 이번 대선 예측도 그런 방식으로 하려 한다. 한마디로 당시 힐러리 클린턴보다 현재 조 바이든의 승리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런 예상은 미국을 위해, 세계를 위해 더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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