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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그 한줄기 불꽃은 여전히 환히 타오른다 / 제프리 보트

등록 2020-11-02 18:34수정 2020-11-03 10:08

제프리 보트 ㅣ 국제노동변호사 네트워크 회장

11월13일 전세계 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맞게 된다. 1960년대 전태일은 어린 여성이 대부분인 봉제 노동자들이 소금땀 비지땀 흘리며 일하던 평화시장에서 야만적인 착취를 목격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벌어도 가난한 임금에, 결핵에 노출되어 극한의 장시간 노동을 암페타민으로 버티곤 했다. 정부와 언론의 무관심에 부딪혀 전태일은 스스로 불꽃이 되어 노동자들이 견뎌온 고통을 알려내려 했고 그의 행동은 현대 한국 노동운동에 불을 댕겼다. 한국을 여러번 방문할 때마다 전태일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묘소 참배는 잊지 못할 기억이다.

50년간 대한민국의 많은 것이 변했다. 농촌 경제에서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나라가 되었고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을 배출했다. 노동조합 역시 성장하여 230만명(전체 노동인구의 11%)을 대표한다. 그러나 또한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 한국 노동자들은 여전히 너무 오래 일한다. 연평균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위다. 생산성이 증가하는 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았고 다수의 청년층과 노년층은 가난하다. 수백만명이, 대체로 여성들이, 파견·하청·단기계약 등 갖가지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정규직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다. 뿌리 깊은 성차별주의로 한국은 남녀 임금 차별 분야에서 최악의 기록을 보유한 국가다.

이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우선 할 일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존중하는 것이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와 98호를 모두 비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다. 국제노동기구가 1998년 채택한 ‘일터에서의 기본적 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한다. 두 협약을 비준했건 안 했건 이 기본권을 ‘존중·촉진·실현’하는 것은 모든 회원국의 의무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이 핵심 원칙이 된 것은 국제노동기구가 설립된 1919년부터다. 1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쓰인 국제노동기구 헌장은 사회 정의 없이 평화 없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사의 자유가 필수적이라고 명시했다. 2차 세계대전 말미인 1944년의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러한 기본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에 필수적”이라고 천명했다.

한국 정부는 두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그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수많은 국제노동기구 보고서가 확인했듯 한국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국제노동기구의 87호 협약과 한참 거리가 멀다.

정부의 약속 이행 실패는 결국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지속가능 발전’ 장에 따른 국제 무역 분쟁을 불러일으켰다. 전문가 패널은 2020년 11월 말까지 한국 정부의 협정 위반 여부와 필요한 조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더구나 비준 약속과 함께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현행법을 심각하게 약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특정 형태의 파업을 금지하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여 교섭의 빈도를 축소한다. 협약 87호와 98호 위반이다. 정부는 협약을 비준하고 국내법을 국제법에 부합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어떠한 차별도 없이 결사의 자유를 누리도록 보장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노조법의 ‘근로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개정하는 법안이 전태일의 이름을 따 발의되었다. 단결할 권리 및 진짜 사장과 교섭할 권리를 박탈하는 다양한 방식의 고용관계 위장을 끝내자는 것이다. ‘전태일법’은 세계적인 법률 추세와도 일치한다. 노동자·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입법과 법원 판결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모든 노동자는 권리를 누려야 하고 노동자의 노동으로 이득을 얻는 모든 수혜자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다가오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모든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법적으로 확대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열사를 기억하는 가장 뜻있는 방법이다.

※노동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와 방향에 관한 연재 기고가 다음주부터 ‘왜냐면’을 통해 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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