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은 뭐랄까 좀 애매한 위치에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이자 ‘국민’의 방송을 자임해 왔지만 지역방송의 역할이나 기능을 논의할 때는 한 발짝 뒤로 빠지는 모양새였다. 지역 시청자로선 지역 <문화방송>(MBC)이나 <에스비에스>(SBS) 계열 지역 민방과 다를 바 없는 지상파 중 하나지만 법적, 제도적 지위는 물론 학계의 논의에서도 지역방송으로 간주하지 않는 분위기가 꽤 존재했던 것이다. 가령 학계에서 지역방송 활성화 방안이나 지역성 구현에 대하여 논의할 때 지역방송은 통상 지역 문화방송 또는 지역 민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방송은 직할국 체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방송은 본사와 지사 구조로 운영된다. 서울에 사는 시청자라고 해서 수신료를 더 많이 내는 것도 아니고, 지역에 거주하는 시청자가 ‘국민’이 아닐 리 없지만 인사, 편성, 제작에 관한 모든 결정 사항이 본사에서 서울 중심으로 좌우돼 왔다. 출발부터 지역성 구현을 존재 이유로 내세웠던 지역 민방이나 지역 문화방송과 비교할 때 한국방송은 지역성 책무를 덜 요구받아 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방송이 일련의 지역방송 활성화 대책을 진행 중인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2월부터 지역 뉴스 강화를 위해 저녁 7시 뉴스 시간대 전체를 지역총국이 직접 제작 편성할 수 있도록 한 <뉴스 7> 지역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제주 사례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보완해야 할 사안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심층성, 다양성, 지역성 측면에서 모두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 <뉴스 7> 지역화와 비슷한 시기에 전국 9개 지역총국에서 제작한 뉴스가 본사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역국의 자율성 강화 차원에서 이 또한 환영할 일이다. 최근 광주총국은 시의회 시정 질문 전체를 특별 생방송으로 내보낸 <풀뿌리 민주주의를 듣다>를 방영하기도 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속으로 더 밀착해 들어가는 기획이라 반가웠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40년째 묶여 있는 수신료를 올리는 게 맞는지, 올린다면 얼마나 올리는 게 맞는지 살얼음판 걷듯 여론을 살피는 한국방송에 색다른 제안을 해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신료 사용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2500원 중 운영비를 비롯해 뉴스, 시사보도, 교양, 오락 등 장르별로 수신료가 얼마나 사용되는지 알기 어렵다. 지역국에 배분되는 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잘 모른다.
따라서 수신료에 대한 거부감은 별다방 커피 한 잔 값보다 못한 수신료를 아까워하는 쪽이 아니라 내 수신료가 내가 원하는 곳에 쓰이고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고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만약 한국방송이 상세 내용을 공개하고,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에 수신료 사용을 지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준다면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나라면 인상된 수신료의 절반쯤은 지역방송 예산에 배정하라고 요구하겠다. 지역방송의 제대로 된 비판과 견제, 환경 감시 기능이 갈수록 약화해 가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지역방송의 열악한 재정 구조를 보여주는 지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방정부나 광고 협찬에 대한 의존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국방송이 지역방송 저널리즘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