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대구 가창 골짜기에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이 들어섰다. 미군정의 친일 관리 채용, 식량배급정책에 맞선 민중봉기인 10월 항쟁이 일어난 지 74년 만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와 지방정부에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을 권고하고도 10년이 흘렀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일이다.
대구시는 달성군 가창 골짜기 안쪽에 아담한 공원을 만들어 위령탑을 세우고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위령탑 가까이 가면 13m에 이르는 대리석에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10월 항쟁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들의 이름이다.
가창 골짜기는 1946년 10월 항쟁 직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 시기까지 많은 민간인들이 법적 절차 없이 군경에 의해 희생된 곳이다. 위령탑에 이름이 새겨진 이들만 728명, 대구형무소 재소자들 가운데 제주 4·3 항쟁 관련 희생자만 최소 142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공원 한편에는 쪽 찐 머리의 어머니가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조형물이 놓였다. 그 옆에 서니 자식 잃은 늙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가창골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사실 당시 유족들은 그처럼 마음껏 목 놓아 울며 애도조차 하지 못했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쉬쉬하며 숨죽이고 살아왔다. 자식들조차 부모를 지운 채 살아야 했다. 10월 항쟁 추모곡에는 그 한 맺힌 울음이 절절하게 담겼다. “오세요, 아버지, 어머니 (…) 대구역 공회당길 붉게 물든 길 걸어 가창골로 오세요 (…) 생존과 자주와 민주를 외치고는 아~ 소식 끊어진 아버지 가세요, 가세요. 10월의 그리운 이여 사랑길만 짚어 가세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이 적법 절차 없이 군경에 희생된 사건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과거사위는 활동 기간 4년 동안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신청한 사건들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2010년 6월 과거사위가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펴낸 보고서를 보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민간인 학살 현장의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유족들에게 배상이 이뤄진 사건들도 상당수다.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각 지자체는 추모를 위한 조례 제정에 나섰고 추모공간을 만드는 등 위령사업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국가가 희생자와 그 유족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공식적인 추모사업까지 하는 사건은 극히 일부다. 여전히 유족들이 가슴에 묻어둔 채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희생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행히 지난 5월 국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다음달부터 2기 과거사위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다른 과거사 사건들과 함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에 대한 기대도 어느 때보다 높다. 한편에서는 개정된 과거사 기본법이 정부의 배상과 보상안, 벌칙 조항 등이 빠져 있어 개정 전보다 후퇴했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21대 국회에서 재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2기 과거사위가 서둘러 과거사 진실 규명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전 두 정부가 지나는 동안 과거사 진실 규명은 멈췄고, 그사이 진실을 증언해줄 많은 생존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국가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데 필요한 조항이 빠져 있다면 법을 재개정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보다 먼저, 이미 과거사위가 진실을 확인한 곳들 그 한 서린 골짜기들에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기억하는 위령비라도 남기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국가 폭력으로 피붙이를 잃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들을 더는 기다리게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