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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독자에게 못 미치는 감수성

등록 2020-11-17 18:48수정 2021-10-15 11:25

<한겨레>는 지난 10일 치 신문과 디지털에 게재된 김민식 피디의 칼럼에 대해 부적절한 내용을 걸러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내보냈다.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한겨레>는 지난 10일 치 신문과 디지털에 게재된 김민식 피디의 칼럼에 대해 부적절한 내용을 걸러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내보냈다.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지난주 <한겨레> 디지털과 신문에 나간 김민식 피디의 ‘숨&결’ 칼럼(‘지식인의 진짜 책무’)에 많은 독자가 비판 의견을 표시했다. 디지털 기사는 페이스북에서 약 이틀 동안 6천여회 공유됐고, 6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가정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인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것 같다”고 항의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한겨레 독자센터에도 여러 독자가 전화로 이 칼럼의 부적절한 대목을 지적하며 한겨레를 나무랐다. 김 피디는 신문 발행일인 10일 오후 “독자 반응을 보며,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라며 디지털에 사과문을 올렸다. 한겨레도 “부적절한 내용”을 “걸러내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일주일 전의 곤혹스러운 일을 꺼내는 이유는 한겨레가 무엇이 부족했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얼 하려는지 독자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한겨레는 사과문에서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독자들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돌이켜 보면, 칼럼을 받아서 게재하기까지 편집국 게이트키핑 과정에 구멍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저널리즘책무실장도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사전·사후에 점검해 해당 부서에 알릴 책임이 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독자께 송구하다는 말씀 드린다.

칼럼이 9일 오후부터 인터넷 한겨레에 올라 있었고, 다음날 신문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이 읽었는데도 내부에서 본격적인 문제 제기가 없었음은 한겨레가 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독자들의 지적이 있기 전까지 내부에서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데 대해 심각성과 책임을 느낍니다”라고 한 사과문 그대로이다. 이는 가정폭력이나 성평등 이슈에 대해 독자가 느끼는 만큼의 심각성에 한겨레가 따라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기사나 칼럼의 어떤 구체적인 대목과 내용이 차별받는 이의 마음을 할퀴게 되는지 감지하고 공감하는 ‘촉수’가 예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언론사는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자는 뜻에서 외부 필자의 글은 원문을 존중하는 게 보통이다. 아슬아슬하지만 도발적인 문제 제기가 밋밋하고 상투적인 글보다 나을 때가 있다. 역지사지 관점에서 언론사의 평소 논조와 다른 글을 싣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내용, 혐오나 차별적인 표현이 담겼다면 언론사가 책임지고 걸러내야 한다. 이걸 소홀히 할 때 독자의 거센 항의에 맞닥뜨릴 수 있다. 한 예로 6월 초 미국 <뉴욕 타임스> 오피니언면 책임자인 제임스 베닛이 물러났다. 경찰의 폭력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약탈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는 톰 코튼 상원의원(공화당)의 칼럼이 문제가 됐다. 이 글에 독자뿐 아니라 내부 구성원들의 항의도 끓어올랐다. 특히 공간이 구분된 지면과 달리, 디지털에서는 뉴스와 외부 기고의 경계가 독자에게 또렷하지 않아 더 주의해야 한다. 7월 초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의 직원 280명은 알마 라투어 신임 발행인에게 서한을 보내 “팩트체크와 투명성이 부족하고 증거를 무시하는 오피니언(글)이 우리 독자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뉴스와 외부 칼럼의 책임 소재를 구분하는 문구를 삽입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이번 일을 계기로 외부 필진의 기고 관리를 더 꼼꼼히 하고, 가정폭력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을 높일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성평등 관점에서 유의할 지침을 공유하며 데스킹 과정에 참고해 왔으나, 이번에 내용을 보강하고 수시로 보완할 예정이다. 또 전문강사를 초빙해 콘텐츠를 다루는 구성원을 대상으로 성차별 등 우리 사회 주요 차별 이슈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강의하고 토론해 갈 계획이다. 일부 선진적인 구성원의 인식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의 감수성을 함께 키워가자는 취지에서다. 김민식 피디는 칼럼 기고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한겨레에 밝혔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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