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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의문 / 김선기

등록 2020-11-18 16:04수정 2020-11-19 02:38

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서울 서초구가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1천명의 청년을 모집하여 그중 300명에게 월 52만원씩 2년간(총 1250만원) 소득을 지급한다. 실험군으로 배정되지 않은 참여자들은 대조군이 된다.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서초구는 이러한 실험이 ‘사회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사전에 정책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예산낭비와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험을 통해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자는 주장은 최근 몇 년간 기본소득론자들에게서 꾸준히 나온 논리이기도 하다. 이들은 엄밀하고 실증적인 정책실험(policy experiment)을 통해 검증된 정책효과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증거 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 결정이 이루어져야 함을 설파한다. 공론장에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토론하자는 견해는 원론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제다. 그러나 다른 의문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실제로 그간 정책 현장에서,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책 문제에서 사회과학이 작동해온 방식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한 정책이 있다고 할 때, 그 정책을 평가하는 연구는 주로 그 정책에 우호적인 견해를 가진 연구자가 맡는다. 연구에 필요한 예산은 그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그 정책에 이해관계를 걸고 있는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예산을 내리는 기관에서 나온다. 보통 연구의 결과는 그 정책의 효과성을 ‘입증’하였다고 말하지만, 사회과학적 훈련을 조금만 받은 누구라도 의문을 던질 만한 논리적 허점이 상당히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구자에 의해서 생산된 ‘객관적’ 자료는 해당 사안에 대한 거의 유일한 자료로서 계속 인용되고 순환한다.

나는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에 이미 우호적인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정책실험과 증거 기반 정책을 주장할 때, 그 뒤편에서 어떤 종류의 자신감을 본다. 설문조사 문항 설계의 세세한 부분에서 연구자 자신이 조사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소위 ‘기본소득’을 지원받은 실험군의 사후조사 결과가 대조군과 비교해 더 긍정적인 수치를 보이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소득 지급의 순효과는 아닐 수 있다는 점, 통계 연구에서조차 연구자는 언제나 연구결과에 개입하게 되며 사회실험에서는 언제나 교란 변인의 영향이 있을 수 있기에 실험 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를 모두 지우고 숫자만을 남겨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라고 주장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는 점을 모두 아는 연구자가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을 말이다.

보통 과학은 종교적인 맹신이나 우상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고들 하지만, 과학 자체도 또 하나의 종교가 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오랫동안 좁은 의미의 실증주의(positivism) 과학 혹은 ‘숫자’를 맹신하는 지식문화, 과학문화를 비판해왔다. 과학을 종교로 쓰지 않기 위해 정책결정 맥락에서는 두 가지 정도의 윤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과학이 몰가치적이고 영원불변한 종류의 객관적 지식을 생산할 수 없음을, 연구자의 주관을 다시 한번 객관화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연구의 과정 및 결과, 도중에 나온 자료에 대한 해석을 연구자가 독점할 수 없으며 더 많은 토론에 부쳐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에 대해 던지고 싶은 두 가지 논점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하나, 현재의 정책실험안은 모두에게 보편지급, 조세 및 복지제도 개혁 등 기본소득 사회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은 환경에서 진행된다. 연구결과의 일반화 가능성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둘, ‘청년의 삶’이 실험 대상인가. 심층인터뷰 하나를 할 때도 연구윤리위원회(IRB)의 승인을 받아야 할 만큼 연구윤리가 강조되고 있는데, 인간 대상 정책실험 이전에 검토해야 할 윤리적 문제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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