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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은전 칼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등록 2020-12-06 16:14수정 2020-12-07 13:23

수년간 동물을 먹지도 쓰지도 입지도 않으며 동물이 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왜 학살이 아닙니까. 이것은 왜 범죄가 아닙니까. 이것은 왜 언어가 아니고 이것은 왜 저항이 아닙니까. 90년대생 이 활동가들은 이전 세대 인간들이 노동자, 여성, 장애인, 빈민, 홈리스 등을 넣었던 자리에 동물들을 넣었다.

홍은전 ㅣ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지난해 여름 김향기는 충주의 어느 도계장 앞에 있었다. 5천여 마리의 닭이 층층이 쌓여 실린 거대한 트럭들이 대기 중이었다. 닭들에게 물을 주던 김향기는 똥과 오줌, 피와 토사물로 악취를 풍기는 트럭에서 닭 한 마리가 탈출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닭을 품에 안자 직원이 달려와 회사의 재산이라며 반환을 요구했다. 그가 거부하자 경찰이 달려와 닭을 빼앗았다. 직원에게 넘겨진 닭은 무참히 도살장으로 던져졌다.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김향기는 또다시 탈출한 닭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경찰이 다가오자 닭을 품에 안은 채 몸을 납작 엎드렸다.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 탈출한 새를 죽이지 말아 주세요.” 완강히 버티는 김향기의 손가락을 경찰이 하나씩 하나씩 꺾었다. 닭은 또다시 경찰의 손에 붙들려 도계장 직원에게 넘겨졌다. 직원은 김향기의 눈앞에서 닭의 목을 꺾으며 소리쳤다. “죽었으니 그만해!”

나는 이 이야기를 김향기가 법정에서 최후 변론으로 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 자리는 자신이 오랫동안 염원해온 자리라며 긴 변론문을 당당하게 읽었다. 그 닭들은 실은 1개월 전에 태어나 몸만 비대해진 병아리였고 제 몸을 버티지 못해 힘없이 주저앉았다. 겁에 질려 심장이 터질 듯이 뛰던 병아리를 두 번이나 품에 안았다 놓쳐버린 그는 두 달 후 도계장 앞에서 자신의 몸을 닭처럼 결박했다. 단 한 마리의 닭도 도살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연민도 자비도 없이 돌아가던 도살 공장의 기계가 그렇게 멈췄다. 그 일로 활동가 넷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되었고 1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향기는 말했다.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장소를 택할 수 있었다면 도살장을 택했을 것입니다. 진짜 피해자들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준비해온 영상을 켰다. 거꾸로 매달린 병아리들이 레일을 따라 끝도 없이 이동하는 도살장 영상이었다. 커다란 칼을 들고 닭의 목을 내리치는 그런 도살장은 어디에도 없다. 현대의 가축들은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죽는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어린 새의 발을 기계에 착착착착 걸어주는 일뿐이다. 그다음 일은 기계가 한다. 레일이 끓는 물을 통과하고 이어서 칼날 사이를 지나가면 머리 잘린 병아리들이 도미노처럼 끝도 없이 착착착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시뻘건 피가 법정의 하얀 벽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하필 영상은 검사의 등 뒤에서 재생되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전기에 감전되어 온몸을 부르르 떠는 돼지의 얼굴과 “이것은 모두 합법이다”라고 말하는 검사의 건조한 얼굴을 번갈아 보게 되었다. 인간에게 합법은 누군가에겐 사형선고와 같아서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돼지가 다음 공정으로 무참히 굴러떨어진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주저앉은 소의 핏발 선 눈을 꼼짝없이 바라보며 우리는 판사의 목소리를 듣는다. “도계장 업주가 피해를 입었다. 나의 행동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게 아닌지 한걸음 뒤로 물러서 행동하라. 이것이 동물들의 바람일 것이다.” 너무도 인간중심적이어서 헛웃음이 조금 났다. 재판을 방청하러 온 것인데 마치 도살장 한가운데 들어선 것 같았다. 마지막 숨을 힘겹게 몰아쉬는 소가 우리의 발밑에서 산 채로 귀를 썰릴 때 방청석에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커진다.

영상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인간의 법정으로 돌아왔다. 죽인 자들이 피해자의 자리에 있고 죽음을 막은 자들이 가해자의 자리에 있는 그런 법정이었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진짜 피해자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동물들의 눈빛과 목소리는 환영처럼 사라졌다. 아주 먼 옛날 쑥과 마늘만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동물들의 후손인 김향기는 그 반대가 되기로 한 것 같았다. 수년간 동물을 먹지도 쓰지도 입지도 않으며 동물이 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왜 학살이 아닙니까. 이것은 왜 범죄가 아닙니까. 이것은 왜 언어가 아니고 이것은 왜 저항이 아닙니까.” 90년대생 이 활동가들은 이전 세대 인간들이 노동자, 여성, 장애인, 빈민, 홈리스 등을 넣었던 자리에 동물들을 넣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빠져나왔을 땐 다리가 풀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모든 걸음마다 힘을 주며 걸어야 했다. 설렁탕, 한우, 곱창, 치킨, 빵과 우유, 치즈, 돈가스를 파는 식당들로 빼곡한 해 질 녘 도시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름답고 참혹한 꿈을 꾼 것 같았다. 판사와 검사의 자리에 동물들이 가득 차 웅성거리는 그런 꿈이었다. (벌금 모금: 국민 350601-04-354395 디엑스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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