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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윈, 빅데이터로 국가에 맞선 돈키호테?

등록 2020-12-08 14:58수정 2020-12-09 02:38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2
마윈 알리바바·마이그룹 창업자가 2017년 영화 <공수도>에 출연한 모습.
마윈 알리바바·마이그룹 창업자가 2017년 영화 <공수도>에 출연한 모습.

미-중의 갈등이 격렬해지면서, 마윈을 비롯한 민영기업가들이 만들어온 회색 지대는 좁아졌다. 9월 당 중앙위원회는 ‘신시대 민영경제의 통일전선 강화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고, 시진핑 주석은 민영기업가들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통일전선’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좋은 혁신은 규제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방식의 규제를 두려워한다. 기차역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항을 관리할 수는 없다.”

10월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금융서밋 연단에 선 마윈(馬雲·56) 전 알리바바 회장의 작심한 듯한 21분 연설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와 핀테크(정보기술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 기업 마이그룹(螞蟻集團·앤트그룹)의 창업자인 그는 중국 지도자들과 최고위 금융 당국자들 앞에서 전자금융 시대의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당국의 규제를 실컷 비웃고 질타했다.

11월2일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등 중국 4대 금융 당국이 마 전 회장과 마이그룹 경영진을 소환했다. 11월5일로 잡혀 있던 마이그룹의 홍콩·상하이 증시 동시 상장은 이틀 전 돌연 중단됐다. 단번에 370억달러(약 40조원)를 모을 예정이던 역사상 최대의 기업공개(IPO)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이 결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마윈은 중국의 권력자들에게 도전한 무모한 돈키호테, 억압적 국가와 대결한 창조적 기업가일까.

마윈은 여러 차례 실패를 딛고 극적인 성공을 거둔 혁신적 기업가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항저우의 가난한 집에서 자라 대학 입시에 두번 실패한 뒤 취업에 번번이 실패해 패스트푸드 업체 케이에프시(KFC)의 면접에서도 거절을 당했고, 세번째 대입시험을 거쳐 사범대에 들어가 영어 교사가 되었다가, 한차례 창업 실패 뒤 1999년 빌린 돈으로 친구들과 함께 항저우의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립해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성장했다는 신화다.

불과 21년 만에 그가 만들어낸 ‘알리바바·마이 제국’은 놀랍다. 2003년 그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를 시작했고, 구매자가 결제 뒤 물품을 받고 구매를 확정할 때까지 결제 대금이 알리페이에 남게 되는 점에 착안해 이 돈을 기반으로 온라인 금융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2014년 금융 분야를 알리바바에서 독립시켜 마이그룹을 출범시켰다.

마윈의 금융제국인 마이그룹은 모바일 결제와 대출의 두 영역으로 나눠져 있다. 2003년 10월 타오바오의 결제 시스템으로 첫발을 뗀 알리페이(즈푸바오)는 휴대전화 앱 결제로 발전해 중국인들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디지털 결제는 2019년 세계 최대 규모인 201조위안(29조9천억달러)으로 성장해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데, 마이그룹의 알리페이가 55%, 텅쉰의 위챗페이가 38.9%를 차지한다.

그런데 마이그룹을 금융 공룡으로 키운 핵심 서비스는 따로 있다. 모바일 앱 ‘화베이’(써봐)와 ‘제베이’(빌려봐)를 통한 소액대출 서비스다. 중국 국유은행들은 개인과 민간 중소기업들에 대출 문턱이 높기로 유명하다. 중국 당국이 국유은행들을 통해 국유기업들에 거액의 대출을 해줘 대규모 건설사업 등 고정자산 투자를 하게 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시스템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웠던 개인과 중소기업들은 휴대전화 앱을 통해 손쉽게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마이그룹의 서비스에 환호했다.

문제는 이 사업의 방식이다. 엄격한 자기자본 비율 규제가 적용되는 은행과 달리, 마이그룹은 첨단기술 기업이란 이유로 규제를 받지 않았다. 마이그룹은 전체 대출액의 1~2% 정도만 자체 자금으로 충당한다. 주로 고객들에게 빌려준 소액대출 증서를 모아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탈바꿈시켜 이를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본금의 100배 이상으로 사업을 키웠다. 이자율은 하루 0.04% 정도로 연리로는 대략 15~16%나 된다. 마윈의 금융 사업이 첨단기술의 외피를 쓰고 규제의 빈틈을 이용한 ‘고리대금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인 약 10억명이 알리페이로 결제를 하고, 마이그룹의 대출을 받은 개인은 약 5억명, 중소기업은 2천만곳 정도다. 여기서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마이그룹은 14억 거대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수요와 물류 흐름을 꿰뚫어보면서 새 사업의 영토를 계속 넓혀갔다. 중국인들의 일상 소비와 금융을 공산당이 아닌 마윈이 지배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 당국의 경계심은 커졌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과도하게 자금을 끌어들여 폭풍 성장한 마이그룹의 소액대출 사업에서 문제가 일어나 ‘중국판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마윈의 개인기업이 14억 중국인들의 금융 생활과 정보를 과도하게 지배하는 상황도 더이상 두고 보기 어려웠다. 마이그룹에 자산과 영향력을 빼앗긴 국유은행들도 반격을 원했다.

2019년부터 당국은 마이그룹을 비롯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그룹들에 대한 규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윈의 10월24일 연설은 폭발의 도화선이라기보다는 당국의 규제가 조여오는 데 대한 ‘실패한 반격’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이그룹 상장을 무기한 연기시킨 당국은 곧바로 ‘플랫폼 경제 영역 반독점 지침’ 초안을 내놓고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에 나섰다. 온라인 소액대출 사업에 대해서도 자기자본 확충, 1인당 대출 액수 제한 등 촘촘한 규제 장치들을 내놓았다. 규정을 맞추려면 마이그룹의 금융 사업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이 2016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에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사진에 보이지는 않음)와 만나 대화하다 생각에 잠겨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이 2016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에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사진에 보이지는 않음)와 만나 대화하다 생각에 잠겨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그렇다면 중국 지도부는 왜 지금 마윈 길들이기에 나섰을까.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모든 분야에 대한 공산당의 지도”를 강조하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사회주의 사상’을 공산당의 헌법(당헌)에 명시한 이후, 중국 당국은 민영기업가들에 대한 고삐를 조이기 시작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인수하는 등 전세계적 확대 경영으로 주목받던 안방보험그룹의 우샤오후이 회장이 2018년 체포돼 사기와 배임 혐의로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았고,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규모를 키운 밍톈그룹 회장이 실종됐고 하이난항공그룹 회장은 추락사했다.

이런 폭풍 속에서도 마윈은 막강한 영향력과 후원자들한테 의지해 규제를 피해올 수 있었다. 마이그룹에는 장쩌민의 손자 장즈청이 주도하는 사모펀드인 보위캐피털을 비롯해 중국투자유한공사, 중국개발은행, 사회보장기금 등이 투자하고 있다. 마윈이 중국 지도부의 자산을 불려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마윈은 공산당원이지만, 세계를 향해 자신이 공산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유분방한 기업가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려 애썼다. 그는 가죽 재킷을 입은 로커나 드레스를 입은 공주로 분장한 채 공연을 하거나, 자신이 주연을 맡아 무림 고수들을 무찌르는 내용의 단편영화 <공수도>(功守道)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중의 갈등이 격렬해지면서, 마윈을 비롯한 민영기업가들이 만들어온 회색 지대는 좁아졌다. 9월 당 중앙위원회는 ‘신시대 민영경제의 통일전선 강화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고, 시진핑 주석은 민영기업가들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통일전선’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시장경제의 길로 나아간 이후, 국가와 기업, 국유경제와 민영경제의 관계는 계속 민감하고 복잡했다. 21세기 들어 중국 지도부는 국유기업을 중시하는 쪽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고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경제가 전진하고, 민영경제가 후퇴한다) 논쟁이 벌어졌다. 시진핑 시대 들어와 2013년 11월 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채택된 ‘전면적 개혁심화의 중대 문제에 대한 결정’은 “국유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발휘시키고 국유경제의 활력·통제능력·영향력을 끊임없이 증강시킨다”며 ‘국유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명시했다.

미국과의 대결에서 ‘전시 태세’를 가다듬고 있는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중국의 약점인 금융 분야를 집중 공략할 것을 우려해, 마이그룹과 텅쉰 등 금융과 빅데이터를 장악한 기업들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쥐어야 할 때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민은행이 올해 전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최초로 전자화폐인 ‘디지털 위안’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마이그룹과 텅쉰이 장악한 금융 기능의 통제권을 다시 국가로 회수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미국은 중국식 경제모델을 ‘국가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정조준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공산당의 통제가 약화되고, 계획경제는 시장경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의 계산은 틀렸다. ‘시진핑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중국이 서구식 모델이 아닌, 공산당의 지도와 국유경제의 우위를 유지하는 중국식 모델을 고수할 것임을 명백히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가 기존의 시장 자본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의 대규모 자본과 기술개발 지원을 받는 중국의 국유기업들이 다른 나라 민간기업들과 불공정 경쟁을 하는 현실을 반드시 바꾸고, 중국의 굴기를 꺾어야 한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중국도 모든 역량을 집중해 반격에 나서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리는 ‘체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마윈은 2016년에 계획경제의 미래에 대해 의미심장한 ‘예언’을 한 적이 있다. “100년 넘게 우리는 시장경제가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믿었지만, 앞으로 30여년 안에 계획경제가 점점 커질 것이다. 빅데이터는 시장의 힘을 예측해 마침내 계획경제를 실현하게 할 것이다”라고. 중국공산당은 국유경제와 첨단기술을 결합시킨 ‘21세기 계획경제’로 미국을 뛰어넘는 ‘위대한 중화 자본주의’를 꿈꾸고 있을까.

박민희 ㅣ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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