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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인테러뱅 습관 with 코로나 / 이나연

등록 2020-12-13 16:59수정 2020-12-14 02:38

이나연 ㅣ 제주도립미술관장

어릴 적부터 보고 지낸 고향 후배가 파리에서 제주로 영구귀국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파리에서 지내야 할 이유가 많다던 이 9년차 파리지앵 작가 부부가 급하게 짐을 꾸린 이유는 당연하게도 코로나19였다. 도시 폐쇄조치를 한두달 참다가 폐쇄 횟수와 기간이 자꾸 늘어지자 결국 귀국을 단행한 거다. 일을 하던 미술관도 문을 닫고, 작업 활동을 해나갈 수도 없으니 파리에 머물 이유도 없어졌다. 집에서 1㎞ 이상 벗어나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했고, 프랑스인들도 일자리를 잃어가는 중이라 외국인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정말로 속수무책 집 안에 격리된 상황에서 마스크만 쓴다면 외출과 이동이 가능했던 한국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보였단다. 대도시에 비해서도 훨씬 안전했던 제주가 고향이므로 귀국 후 정착지도 제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올 한 해 가장 잘한 일은 코로나19를 피해간 것이라는 자조적인 회고가 많았다. 해외에 나갈 일이 요원해진 만큼, 파리의, 뉴욕의, 런던의 작가들은 어찌 지내는지 소식이 궁금했다. 제주에 본부를 둔 문화예술단체가 베를린의 디자이너, 로체스터의 작가, 뉴욕의 기획자에게 제주 어딘가, 혹은 지구별 어딘가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의 안부를 물어달라고 청했다. 프로젝트명은 인테러뱅.

인테러뱅(?!)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합성된 감탄 부호로,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물음느낌표 정도가 된다. 1962년 뉴욕의 광고회사 대표였던 마틴 스펙터가 고안했다. 한국에서는 2008년에 이어령 작가가 <젊음의 탄생>이란 책에서 소개해 회자됐다. 1960년대에도 그랬고, 2010년대에도 그랬고, 2020년대에도 질문(?)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삶의 방식에는 변화가 없기에, 인테러뱅은 새롭게 발굴되고 재사용되며 널리 전파될 만한 가치를 가진다. 2020년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된 인테러뱅 프로젝트는 기획자들의 말을 빌리면 “의문을 사유로만 남겨두지 않고 보다 현실적인 해법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주고받게 될 다양한 ?와 !를 상징”한다. “온라인 플랫폼의 유동성을 적극 활용하여 다양한 창작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이 플랫폼의 기능을 의심하고 실험해봄으로써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한 난관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해본다.

2020년 한 해 수많은 전시가 취소되거나 연기, 온라인 감상 방식으로 대체됐다. 각종 강연과 교육 등의 부대행사 역시 동영상이나 온라인 미팅으로 전환되거나 역시 취소됐다. 온라인 플랫폼은 관람객을 시간과 거리로부터 자유롭게 하지만, 사진과 영상에는 잘 담기지 않는 특성의 매체를 다루거나 현장성을 중요시하는 작가와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다양한 한계를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인테러뱅은 이러한 난관에 대한 작가들 각자의 생각과 경험담을 나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변화된 삶의 방식에 대응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불안한 상황을 도피하기 위해 “잠을 많이 잤다”는 이부터 현실적인 경제적 대안으로 “주식과 부동산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는 이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즐겨 들르는 웹사이트가 잡담을 나누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처럼 플랫폼에 지속적으로 소개된다. 매달 17일 마감으로 코로나19가 지속되는 한 오픈콜로 인터뷰 접수를 받으며 지속될 프로젝트다.

인테러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후원하고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진행하는 ‘아트 체인지 업’이라는 공모에 선정돼 진행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온라인 예술활동의 일상화에 대비하고자 만들어진 온라인 플랫폼 긴급조치 사업이다. 예술과 예술가를 지원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 역시 인테러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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