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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버릴 것 안 만들기 / 박주희

등록 2020-12-20 17:56수정 2020-12-21 02:39

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다시 집콕인가.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불만을 터뜨리고 싶지만, 대안이 없으니 조용히 한숨만 쉰다. 초봄 대구에서 호되게 당한 후 코로나19와 더불어 사계절을 났다. 이제는 적응도 할 만큼 했으니 이 겨울도 무사히 넘길 수 있으리라 다독여 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콕 생활을 착실하게 할수록 쓰레기 문제가 따라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느는 만큼 몸무게가 늘고, 그보다 더 무섭게 쓰레기가 는다. 웬만한 생필품 구입은 온라인에 의존하니 집 안에 포장 상자가 쌓이고, 냉동식품이라도 배달시키면 스티로폼 상자에 아이스팩까지 쓰레기가 순식간에 산더미다. 배달 음식도 더 자주 주문하게 된다. 한 끼 식사로 나오는 플라스틱 용기를 볼 때마다 움찔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니’ 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몸은 편해도 마음은 영 불편하다.

이런 생활의 결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3월 대구에서 수거한 재활용 쓰레기는 8000톤으로 예년보다 1000톤가량 늘었다. 우리나라 올해 상반기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하루 평균 850톤으로 지난해와 견줘 16%쯤 불었다. 같은 시간 비닐도 11% 더 나왔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동안에도 꾸준히 쓰레기를 줄이려고 애쓰는 이웃들이 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역 가게이다. 제로웨이스트는 ‘버릴 것 안 만들기’ 혹은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제로웨이스트 지도’를 만들었는데 지난해 9곳이던 가게가 올해 20곳으로 늘었다.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가게들의 숨은 노력이 보인다. 지도 위 가게들은 플라스틱, 비닐 사용량을 줄이는 가게, 포장재를 다시 쓰는 곳, 다회용기를 빌려주는 곳 그리고 일회용 플라스틱과 비닐 제로 가게로 크게 나뉜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빵집, 카페, 책방, 친환경 제품만 판매하는 소매점이 대구 곳곳에 자리 잡았다. 어느 가게는 흔히 쓰는 포장용 에어캡보다 10배 비싼 종이 충전재를 고집한다. 어떤 카페는 빨대 메뉴판을 마련해 손님들이 친환경 소재 빨대를 골라 쓰게 한다. 이 가게들에서 곡물이나 면류, 채소, 세제 등을 덜어서 사거나 음식물을 포장해 가려면 도시락통이나 텀블러 등 포장용기를 직접 가져가야 한다.

지도를 받아보고 반가운 마음에 지도 맨 위에 소개된 가게를 찾아가봤다. 젊은 주인장은 영국에서 머무를 때 이웃에 이런 가게가 3곳이나 있어 자주 이용했는데 그 덕분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가게를 열었단다. 작은 가게에는 소분해서 파는 국수며 라면, 채소, 곡류, 세제가 보이고 갖가지 친환경 제품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세제를 직접 써보고 텀블러나 빈 용기를 씻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벽에는 각종 환경 관련 정보와 모임 공지가 촘촘하게 걸렸다. 가게 안쪽에 식탁 서너 개를 놓고 비건 샐러드와 차도 파는데 채식음식점이 드문 지역에서 은근히 입소문이 났다. 집에서 챙겨 간 빈 페트병에 가루 세제를 덜어서 무게를 재고 담아 왔다. 어릴 때 심부름으로 냄비를 들고 가 국을 사 오거나 페트병에 석유를 담아 온 기억 외에는 직접 포장용기를 가져가 뭘 사보기는 처음이다. 클릭 몇 번으로 배달시키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번거롭지만, 세제용 두꺼운 비닐 쓰레기 하나를 덜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이 생각보다 컸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안간힘을 쓰며 코로나19 시기를 버텨내고 있다. 이 어려운 때,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고 이윤을 양보하는 제로웨이스트 가게들이 오히려 늘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만드는 데 5초, 쓰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이라는 플라스틱 쓰레기만이라도 줄일 궁리를 해본다. 새해에는 이 가게들에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드나드는 상상을 하며 다시 집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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