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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이 땅에서 가장 절박한 자리 / 이도흠

등록 2020-12-27 15:54수정 2020-12-28 02:41

이도흠ㅣ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금 가장 절박한 자리는 어디일까. 코로나로 사망하는 곳도 이에 못지않지만, 단연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자리다. 매일 300여명이 일하다가 떨어지거나 벨트에 끼이거나 무엇엔가 깔려 다치고, 그중 2.6명은 목숨을 잃는다.(2015~2019년 평균) 가족과 더불어 기업과 나라의 경제를 살리던 일꾼들이 안전 소홀로 죽어가고 있다.

2019년 한 해에만 10만9242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했고, 이 중 2020명(사고: 855명, 질병: 1165명)이 죽었다. 정부는 산재사고 사망자가 116명이나 줄어들어 800명대에 진입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이는 산재보험 가입 노동자가 1907만명에서 1872만명으로 줄어들고 사망사고의 51%를 차지하는 건설업이 불황으로 공사를 줄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건설업의 산재사고 사망만인율(1만명당 사고 사망자 수)은 1.65명에서 1.72명으로 늘었다. 전체 만인율은 0.46명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로 미국, 독일, 일본의 4배에 이른다. 산재사고로 인한 경제 손실도 매년 20조원이 넘는다.

원인은 여러가지다. 직접 원인은 떨어짐(40.6%), 끼임(12.4%), 부딪힘(9.8%), 깔림(7.8%), 무너짐(3.6%) 등이지만(2019년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발생형태별 통계), 근본 원인은 안전비용을 목숨값보다 소중히 여기는 기업 문화, 안전시설의 미비, 적당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다. 실례로, 안전보건공단의 3년간(2016~2018년)의 ‘중대재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현장의 약 30%가 ‘방호장치 미설치나 불량’으로 파악됐으며, 약 17%는 추락방지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하는 등 ‘작업수행 절차가 부적절’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설치된 방호장치는 작업발판(13.7%), 안전난간(11.7%), 추락방지망(10.1%) 차례로 분석됐다.

도대체 작업발판 값이 얼마나 하는가. 사람의 가치보다 돈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본주의의 산물이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 와서 이는 더욱 극단화하였다.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하면서 ‘위험의 외주화’가 당연시되었다. 자본의 야만을 제한하던 것들이 규제 철폐로 사라지고 기업이 더욱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면서 생명보다 비용을 더 따지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며 대체가 불가하다. 사망자들은 모두 함씬 사랑을 받으며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이나 자식들이다. 유가족의 말대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그 순간에 가족의 삶은 멈춘다.

이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가 사라지고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하지만, 지금 당장 가능한 대안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2014년, 현대제철에서 1년5개월 동안 13명이나 산재로 사망하는 바람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경고성 전화를 하자 정몽구 회장이 바로 헬기를 타고 당진 공장으로 가서 5천억원을 안전에 투자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임원부터 엄중 문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 제대로 제정되면 모든 기업에서 이것이 가능할 것이다.

매년 2천명이 넘게 산재로 노동자들이 죽는데도, 위반자의 2% 남짓만 실형을 선고받고 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했는데 2020년에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로 38명이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기업총수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 없이는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다. 산재 사망자 10명 중 8명이 50인 미만 소기업에서 사망하는데, 유예기간을 두면 8명은 죽게 놔두고 2명만 살리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원청과 사업주의 처벌을 명시하고, 50인 미만 소기업에 대해서도 유예기간 없이 전면 적용해야 한다. 필자가 제안하자 절박감과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즉각 응답하여 교수, 연구자, 불자 지식인, 작가들이 지난 18일부터 무기한 릴레이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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