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농성자들이 2일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2021년 맞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및 소원 나눔 행사\'에서 산재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소원 쪽지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소원탑’에 붙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강수돌 ㅣ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참 이상하다. 일하다 죽는 이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온 나라가 분노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은 무심하다. 산재 사망은 (해고나 ‘갑질’처럼) 동료·가족에게 ‘노동 트라우마’를 남긴다. 매일 7명이 산재로 죽는 현재, 사업주 책임을 강제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020년을 달궜다. 2021년 새해, 동해의 햇살만큼 우리 현실도 밝은가?
출근 후 죽는 노동자가 매일 10명 내외인 현실은 총알 없는 전쟁이다. 뭘 위한 전쟁인가? 가족‧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다. 이윤을 위한 전쟁이다. 이를 막아야 사람이 산다.
그러나 자본을 대변하는 단체들은 거부한다. 개정 산안법도 힘든데 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과잉규제라 한다. 혹 이게 실시돼도 50인 미만 기업은 빼란다. 합당한 논리인가?
첫째, 객관적 상황을 보자.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줄곧 산재 1등이다. 부끄럽다. 하루 7명 사망 통계도 최악이지만, 실상은 더하다. 하루 250명꼴의 부상은 산재도 아닌 공상(公傷) 처리된다. ‘매일’ 그러니 무섭다. 전쟁터 인근의 병원 꼴! 또 기업의 99%가 50인 미만 사업장인데, 산재 85%의 진원지다. 중대재해 예방·처벌의 중점도 여기다. ‘정곡은 피하고 주변만 건드리는’ 우를 반복하지 말라. 물론, 근본적으론 자본의 이윤 경쟁이나 원청 (대)기업에 의한 ‘위험의 외주화’ 구조가 있다. 따라서 연대 책임이 기본이나, 핵심 현장을 ‘사각지대’로 방치하면 어떤 법도 실효가 없고 위험의 외주화만 영속된다.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 정곡을 찔러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에 대해 중대재해 처벌을 강화하면 ‘정상’ 운영이 어렵다 한다. 단기적으론 맞다. 하나 단기적 비용 절감이 장기적 생존에 치명적이란 증거는 많다. 지금 굳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려는 목적도 바로 이 가당찮은 산재를 원천봉쇄하는 것! 아무리 기업이 힘들어도 인명 희생을 당연시하면 안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우주의 죽음’이란 말처럼 사람이 살아서 일하자는데, 경영 악화를 근거로 이를 무시하는 건 ‘정상’인가? 일찍이 조지아 대학의 아치 캐럴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경제적, 법률적, 윤리적, 재량적 책임으로 위계화했다. 그러나 나는 앞의 둘을 바꿔 보고자 한다. 법을 어긴 경제 행위는 범죄니까! 많은 경영학 연구들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수록 그 구성원들이 자긍심으로 헌신한다고 한다. 게다가 선진 각국은 산재 처벌 강화로 기업들이 산업안전에 집중하게 되어 결국 경영도 더 안정화했다. 이것은 마치 강한 산별노조가 있는 유럽에서 기업들이 노동자 목소리를 더 반영해 선진 경영을 개발한 것과 같은 이치다. 즉, 노조나 법률 등 사회적 압박은 경영에 위협 요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영 선진화 요인이다.
셋째, 스탠퍼드 대학의 제프리 페퍼 교수는 “사람이 경쟁력”이란 명제로 저명하다. 세계 일류기업들엔 기술력이나 자금력, 시장력이 아닌 노동력이 최고 경쟁 원천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초일류기업일수록 고용 안정, 공정 보상, 동기부여, 참여와 분권, 격차 축소와 평등주의, 장기적 안목 등 인사노무 관행을 실시해 경쟁 우위를 잡았다. 이 모든 관행의 기초엔 당연히도 산재 예방 및 노동 건강이 있다. 한국에선 초미의 관심사인 중대재해 처벌 이슈가 선진 경영에서는 그저 기본일 뿐! 만일 “비용 부담” 내지 “시기상조” 논리로 중대재해의 축적을 묵인한다면 우린 영원한 후진국이다. 60년 전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일 때 관행을 과연 4만달러에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과감한 도약(take-off)을 할 것인가? 이는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다.
사실 나는, 사람을 경쟁력의 도구로 삼는 관점조차 마뜩잖다. 하지만 사람을 중시하지 않는 경영·경제는 그 자체로 소외다. 원래 경제(經世濟民)라는 말 자체가 사람을 살리는 일! 이제, 기업에 의한 ‘제도적 살인’은 그만두고 사람을 살리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건 아니’란 옛말은, 이윤·경쟁 논리가 삶을 압살하고 노동 트라우마를 양산하는 오늘날 더 유효하다. ‘기업살인법’ 제정, 역사의 전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