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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제는 당신이 써야 한다

등록 2021-01-25 04:59수정 2021-01-25 09:56

[한칼 공모 연쇄기고] 칼럼이 칼럼에게 _3
* 편집자: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공모 중입니다. 접수기간(2월23일 마감) 동안,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를 주제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존 칼럼니스트들의 기고를 매주 초 게재합니다.
난감하다. 매달 칼럼 한번 쓰는 것도 버거워서 끙끙대는 사람이 남에게 글쓰기를 권하는 것이니 가당치 않다. 게다가 말려도 시원찮을 일 아닌가. 애당초, 싹수가 노란 일이다. 그래도, 한마디 한번 들어보시라.

왜 쓰는가. 일찍이 조지 오웰은 말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네 가지. 순전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에고이즘, 언어의 아름다움을 고취하는 미학적 열정, 역사적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사람들을 이끌려는 정치적 목적. 세상의 모든 글을 아우를 만한 적절한 구분법이다.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이는 그저 사후적인 관찰이다. 오웰이 저명한 작가로 자리 잡은 뒤 돌이켜 보고 알아내어 구분한 것이다. 변화무쌍한 한 개인이 왜 하필 그 순간에 펜을 들게 된 까닭을 설명하진 못한다. 그걸 또 어찌 알겠는가.

내 사정은 이렇다. 나는 바깥에 산다. 벌써 25년을 넘겼다. 영어로 밥벌이를 하는데도 영어는 놀랄 정도로 늘지 않는다. 경상도 억양이 섞인 나의 오묘한 퓨전 영어를 이해하는 동료들은 정말 경외로울 지경이다. 버벅대는 언어로 살다 보면, 한글 한마디가 마음과 뼈를 때린다. 그리고 멀리 살다 보면, 한국의 사정이 잘 보이거나 달리 보일 때가 있다. 바깥의 사정까지 보태어서 생각해 보면, 저 막막한 거리감이 그저 신기루일 뿐이지 싶다. 가까이 보면 잘 보이겠지만, 멀리서 보면 더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구름 몇 점만 잘 걷어내면,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서 칼럼 제목도 ‘바깥길’이라 붙였다.

사실, 본다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인가. 높은 곳에서 보면 잘 보이겠지만, 낮은 곳에서 봐야 보이는 것들도 많다. 지금은 가깝게 높은 곳에서 보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시끌벅적하다. 그들끼리 천상에서 빚어내는 괴성. 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린다면, 그 소리 때문에 내 옆의 소중한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당신의 언어가 갈 길을 잃었다면, 술잔을 밀어내고 자판 앞에 앉아야 한다. 복잡한 이유가 없다.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듣지 않는다. 들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 누군가가 당신이 아니라고 장담하지 말자. 마치 비웃는 듯이 환하게 빛나는 컴퓨터 화면에 글을 채워 보기 전까지,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은 모른다. 나도 그랬다.

뭘 쓸 것인가. 다 아는,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라 할 것이다. 나쁘지 않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마땅하고 당연할 일이 어그러졌기 때문이지, 난생처음 보는 외계인 탓이 아니다. 일하다 죽는 일을 없게 하자는 것은 얼마나 뻔한가. 어린 학생들의 비명횡사의 원인을 묻는 것은 또 얼마나 뻔한가. 뻔한 감자줄기 캐어내는데, 타고난 몇몇이 가졌다는 날카로운 칼은 필요 없다. 괜한 칼잡이 흉내 내다가 손만 베인다. 권력을 바꾸는 칼은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칼은 없다.

보고 느낀 대로 뻔한 일을 쓴다는 것, 어렵다. 내가 본 것이고 내가 느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내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평범한 단어를 쓰면서도 그 단어는 나의 단어이어야 한다. ‘생경한’ 단어도 필요 없다. 정의, 평등, 권리, 모두 빛나는 어휘다. 하지만, 내 생생한 언어 속에 녹아 있지 않으면, 메아리 없는 구호일 뿐이다. 결론만 명징한 손가락질보다는, 내 경험과 사색의 과정을 드러내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좋다. 물론 쉽지 않다. 몇 년 동안 칼럼을 쓰고도 나는 아직도 전전긍긍한다. 나는 초고가 만들어지면 아내에게 먼저 보여준다. 쓸만하다는 평가를 듣고 나서야 글을 보낸다. 그나마 내 정신줄을 잡아주는 유일한 방책이다.

오랫동안 썼지만, 나도 뻔한 얘기만 썼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일하고,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벌게 하고, 그렇게 살면서 차별 없이 존중받는 사회. 하지만, 나는 이 세 가지가 보장된 ‘철밥통’ 삶을 살고 있다. 내 글쓰기가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이유다. 그래서 당신들이 글을 많이 써줬으면 한다. 머리통을 후려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대며 ‘여기 보란 말이야’라고 따지고 외치는 글. 그런 뻔하지 않은 글을 당신이 아니면 누가 쓰겠는가.

이상헌 ㅣ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알림]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리영희, 정운영, 조영래, 박완서…. 더는 만날 수 없지만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지성의 이름입니다. 시대의 죽비가 되고, 웃음이, 눈물이 되었던 <한겨레> 칼럼 필자들입니다. 오늘은 또 다른 필자들이 그 자리를 이고 집니다.

이제 <한겨레>는 언론 사상 처음으로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더 다양한 통찰과 감성을 발굴해 독자와 연결짓길 희망합니다. 희망이 절망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과거가 현재에게, 꿈이 꿈에게,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한칼’, 시작합니다. 함께해주세요.
누가 : 할 말이 있는 지구인 누구(개인, 글쓰기모임 등 단체)든
무엇을 1 : 전체 전문 주제(제한 없음)와 각 소재 등이 담긴 6~12회 기획안, 그중에 포함될 칼럼 2편(편당 2000자)과
무엇을 2 : 공통 질문에 대한 300자 이하의 답변을
언제 : 2월23일 22시까지 6주 동안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보내실 곳 : opinion@hani.co.kr (이메일 제목: <한칼 공모> 성함)

* 공통 질문(답변은 모두 300자 이하)은 4가지입니다.
―지원한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선발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본인의 칼럼을 더 널리 다른 독자청중과 공유할 방안을 알려주세요.

* 단체가 선발될 경우, 한 코너를 소속 회원들이 나눠 연재하면 됩니다.
* 선발된 분들께 칼럼니스트 자격과 칼럼당 책정된 원고료를 드립니다.
* 성윤리, 표절 등의 문제가 확인될 경우 선발, 게재 등을 취소합니다. 지원서류는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온라인 접수만 가능합니다.
* 문의: (02)710-0631,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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