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ㅣ영화감독·작가
한 수어통역사가 무대에서 힙합을 통역한다. 청인들은 근사하다며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친다. 무대에 선 뮤지션만큼 수어통역사도 주목받는다. 그런데 통역이 엉망진창이다. 수어를 모르는 청인은 감동한다. 무대 아래에 선 농인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청인과 통역사를 바라본다. 이 모든 것을 미국 코다 수어통역사가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바꿔가며 연기한다. 그가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상황극이다. 그는 수어와 수어통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환영할 일이나 방향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현상이 정말 농인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인지 말이다. 주목받아야 하는 건 통역사가 아닌 그들을 무대 위에 서게 한 농인이어야 한다고, 통역을 제공받는 건 농인의 권리이기에 멋진 일이 아니라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이 폭발적 관심이 오히려 농인 당사자의 삶과 현실을 가리고 있다고 말이다.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의료진의 헌신과 노고를 기리기 위해 ‘덕분에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모두가 다 아는, 오른손의 엄지를 펴고 아랫부분에 왼손바닥을 대는 이 동작은 2020년 4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대통령을 시작으로 연예인,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까지 참여하는 대국민 응원 캠페인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이것이 ‘덕분에’라는 수어가 아니라는 거였다. ‘존중하다’ ‘존경하다’라는 뜻으로, 의료진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는 넓은 의미로는 맞지만 ‘덕분에’라는 뜻은 아니다. 또한 수어는 얼굴 표정과 공간을 활용하는 언어다. ‘덕분에 챌린지’ 손동작을 아래에서 위로 매끄럽게 올림과 동시에 존중하는 표정을 지어야 ‘존경하다’라는 의미가 완성된다. 사람들은 수어를 알게 되었다며 너도나도 캠페인에 참여했고 이는 ‘케이(K)-방역’을 상징하는 기호로 재탄생했다. 누군가는 수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니 좋은 것 아니냐고 했지만 불편했다. 캠페인의 지향점은 ‘수어를 배웠다’에서 나아가, 마스크 착용 일상화로 얼굴 표정을 보기 어려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코로나19로 의료·사회·경제적 타격을 맞은 농인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수어를 도구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방역을 성공적으로 해낸 정부를 둔, 사회적 소수자의 언어인 수어를 쓰는 진보적 국민’이라는 이미지만 취했다. 더 위험한 것은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였다. 모두가 수어를 사용하는데 왜 그렇게 비판적이냐는 말을 듣기 십상인, ‘케이-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다.
그로부터 한달 뒤, 2020년 5월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덕분에 챌린지’의 엄지를 아래로 향하게 한 오른손을 왼손바닥에 올린 동작을 이미지로 게시하며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하는 ‘오리온_때문에’ 캠페인을 벌였다. 그 동작은 존재하지 않는 수어였다. 2020년 8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안에 반대하며 ‘덕분에 챌린지’의 손 모양 전체를 아래로 향하게 하여 ‘덕분이라며 챌린지’를 시작했다. 이 또한 없는 수어였다. 수어가 기호로만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덕분에 챌린지’의 사회적 파급력과 뉴스 화면에 간간이 보이는 수어통역을 통해 누군가는 농인의 정보접근권이 보장되었다고 하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에는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지 않았다. 방송사마다 수어통역이 제공되었지만 화자 옆에 수어통역사를 세워 동등한 화면 크기로 알 권리를 보장하던 이전 정부 브리핑과 비교하면 퇴보한 결정이었다.
올해 2월3일은 첫번째 ‘한국수어의 날’이며 1일부터 7일까지는 한국수어 주간이다. 다시 한번 질문해보자. ‘덕분에 챌린지’만큼 그 언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삶에 관심을 가졌는지, 기호로만 소비한 건 아닌지, 농인 스스로가 적확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내어주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