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흠 |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지난 1월26일치에 실린 이주희 교수의 ‘사면과 미완의 혁명’ 칼럼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에 반대하는 주된 논지에는 100%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 논거로서 제시한 조선시대 인식에 대해서는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투고하게 되었다. (
관련 기사 보기 : [숨&결] 사면과 미완의 혁명 / 이주희 )
흔히 서양에서 시민혁명으로 군주를 처형한 것이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된 사실을 들어서 그러한 경험이 없는 조선시대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동학농민혁명에서조차 다른 나라 군대를 끌어들여서 자국민을 진압하는 ‘어리석은 왕조’를 부정하지 못하였다고 질타하였다. 당시 농민군 지도부에서 고종과 조선왕조 국가를 부정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시각에서 볼 때 성이 차지 않는다고 해서 농민군의 의식 수준을 무시해도 좋을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조선이라는 ‘국가’와 ‘국왕’에 대한 당시 대중들의 인식이 서구 정치사상에 경도된 오늘날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서구와 달리 집권국가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국가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는데, 국가가 계급갈등을 넘어서 다수 근로대중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존립할 수 있었다. 국가가 법과 제도를 통해서 지배계급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 민의 창조적 역량이 극대화되어 국가가 번영하였지만 이러한 제도가 이완되어 지배계급의 계급적 착취가 만연되면 민의 저항으로 국가는 위기에 빠졌다. 조선시기에 국왕은 현실 문제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치적 속성상 보수적 이념에만 안주해 있기는 어려웠다. 국왕과 신료들 모두 지주라는 동일한 계급적 지반을 공유하였지만 양반 지배층과 달리 국왕은 국가의 유지·보존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과제였다. 즉, 국왕은 지배계급보다 국가를 먼저 대표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존재였다는 것을 조선시대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유행어는 조선시대 전공자로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문제를 지금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따지지 않고 모두 조선시대로 소급하여 비판하려는 인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박정희 등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건너뛰려고 한다는 혐의가 있다. 동시에 전세계 식민지 가운데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서 독립운동이 지속 전개된 것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촛불혁명으로 두명의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것은 분명 성숙한 민의 의식의 산물이었다. 이것은 동학농민혁명과 독립운동, 그리고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동학농민혁명을 가능케 한 것은 조선 후기에 성장한 민의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서구에서 군주를 처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민주권을 완벽하게 구현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서구의 정치사상에 의거한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것이 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서 정치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조선왕조 국가가 식민지로 전락했다고 해서 헬조선의 갑질만 판을 쳤다고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하게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역사는 발전하여 생산력은 증진되었고, 민의 의식은 고양되었다. 사회가 변동하는 것에 따라서 대동법과 균역법처럼 양반 지주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제도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제도 개혁에 양반 지배층은 대부분 반대하여 장구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국왕이 중심이 되어 진보적 지식인들의 협력으로 조금씩 성과를 쌓아가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국가와 국왕을 부정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역사적 유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계승한 촛불혁명 역시 국가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하여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봉건적 사고의 잔재인 것이 분명하지만,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부의 대통령을 격려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