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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늙은’ 칼럼니스트의 심사

등록 2021-02-14 17:50수정 2021-02-15 02:30

[한칼 공모 연쇄기고] 칼럼이 칼럼에게 _6
* 편집자: <한겨레> 칼럼니스트 공모가 2월23일 마감됩니다.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새해의 한가로움을 ‘칼럼’에 대한 반성으로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며 “많은 분들이 칼럼 쓰기에 참여해 내가 느끼고 얻은 경험을 같이, 아니 더 크게 가지시기 바란다”고 전해왔습니다.
젊은 나는 기자로, 문학평론가로 행세하면서 기사며 문학작품 비평을 쓰는 동안 이런저런 매체로부터 청탁을 받고 또 갖가지 글들을 썼다. 정치와 현실에 대한 묵직한 글이기도 했고 회상이나 일상에의 잡상에 이르는 가벼운 글이기도 했다. 나이 들기를 넘어 늙어가면서 내 직업적 글쓰기의 테두리는 줄어들고 때마다 자리마다 느끼고 생각나는 일들도 좁아졌다. 그런 참에 더러 온 청탁이 정기 칼럼이었고 <한겨레>는 아예 기명의 ‘칼럼’을 부탁해왔다. 기왕의 글쓰기 수준과 책임을 한 급 올려주는 느낌이어서 영예롭게 여겨야 했고 그렇게 그 난을 채운 지 어느 사이 9년째에 이르렀다. 그런 참에 문득 ‘칼럼’이란 글의 성격, ‘칼럼니스트’로서의 자세를 물어와 나는 당혹했다. ‘칼럼’ 필자로 글을 써왔지만 정작 ‘칼럼’이 어떤 유의 글을 가리키는지 별다른 의식도 없었고 그 글을 쓰는 품새를 특별히 가다듬지도 않아온 것이다.

정신이 퍼뜩 들어 문학적 장르로 규정된 것도 아닌 ‘칼럼’의 정체를 새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프라임 영한사전>의 ‘column’에는 첫 뜻 ‘기둥’에 이어 ‘원주 모양의 물건’이란 풀이, 군대의 ‘종대’가 있고, 추가로 ‘(신문 등의) 난’, ‘(신문의) 특약 정기 기고란’이라 하여 비교적 분명한 풀이를 주고 있었다. 그 풀이에는 ‘기둥 모양에서 세로로 긴 페이지의 난’으로 그려진 도표도 있었다. 그래서 대충 신문이란 나날의 소식을 알리는 특정한 매체, 정기적이란 시간성, 특약이란 관계로 이루어진 글쓰기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대체로 그런 틀로 ‘칼럼’을 써왔던 것 같긴 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공공연한 의미로 내 뜻을 넓혀 읽는 이들의 공감을 얻을지, 그러려면 어떻게 글줄을 늘이고 구성을 짜야 할지 고심하며 정해진 마감과 글의 길이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의 그 고역에도 나는 이 독특하다고 해야 할 장르의 글쓰기를 즐겨왔던 것 같다. 매일의 뉴스를 보도하는 매체이기에 그 주제는 시의성을 고려하며, 정한 날짜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는 약속을 오히려 달가워했다. 나는 바로 이 칼럼 쓰기, 쓰고 고치고 바꾸고 줄이고 하는 그 글들과의 씨름에 버릇되면서 내 의식의 결기를 다잡고 거기서 빚어질 긴장과 씨름했다. 글은 그 글 쓸 즈음의 시의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무엇을 써야 할지 주제와 줄거리를 찾고 고르고 구성을 하는 절차를 어느 문학적 글쓰기나 시사적 기사 쓰기 못지않은, 아니 칼럼의 성격에 어울려야 할 제약을 지키기 위해 더 심하게, 사유들 속을 부지런히 헤매야 한다. 그런데 그 외형의 한계가 주는 내면적 자유가 즐거워오는 것이다.

나는 사건의 추이를 추적하는 기사나 해설, 혹은 사설처럼 객관적 주장이나 규명으로 엄격하게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사건과 사태에 대한 내면의 사유나 회상을 ‘수필’이란 용어처럼 흐르는 대로의 자유로운 생각들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었다. 설정한 주제는 큰 틀에서 짚은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사유와 접근은 부드러운 사고의 진행에 따라 풀어간다는 것, 그것은 시나 소설 같은 개인적 상상의 분방을 유보하는 대신 익명의 공적 주장이나 설명이란 비개인성에 빠지지 않고, 바로 나이기 때문에 생각하고 쓰는, 또 쓸 수 있는 자유를 가지면서도 그만큼 객관적 공론적 성격을 버리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새 책, 옛 기록을 찾고 묵은 기억들을 헤집어내며 이 생각과 저 사건을 맺고 거기서 보탤 것 뺄 것을 정리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러니 글의 주제가 당시의 현실적 상황에 매이지만 그 접근 방법과 태도는 탄력적이며, 글의 내용은 통개인적이고 공론적이지만 글의 형태와 쓰기는 유연하고 사유와 추리는 필자의 개인적 특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해줄 것이었다. 제약 속의 자발성, 한계 속의 제멋대로임을 열어주는 ‘칼럼’의 형태는 그래서 노년의 내 바람에 어울려가는 것 같다.

젊을 때의 나는 거창하게 ‘문명비평가’일 수 있기를 꿈꾸었다. 한갓 소망으로 그치고 만 것은 분명하지만, 내 시들어가는 마음을 토닥거리며 움직이는 세상과 침잠하는 의식 간에 다리를 놓아 여전히 세계에 대해 긴장하고 까다로운 현실을 고려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이 ‘칼럼’ 쓰기 덕분이다. 몇 해 후의 앞날도 기대할 수 없는 낡고 늙은 내게, 그것은 고역이면서 즐거운 보람이고, 덧없는 일이되 의미 있는 고민을 치른다. 그 살아 있음의 확인을 위한 노력이, 모든 것을 정리해 마쳐야 할 나이임에도 여전히 미련으로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리라.

김병익 | 문학평론가

[알림]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리영희, 정운영, 조영래, 박완서…. 더는 만날 수 없지만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지성의 이름입니다. 시대의 죽비가 되고, 웃음이, 눈물이 되었던 <한겨레> 칼럼 필자들입니다. 오늘은 또 다른 필자들이 그 자리를 이고 집니다.

이제 <한겨레>는 언론 사상 처음으로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더 다양한 통찰과 감성을 발굴해 독자와 연결짓길 희망합니다. 희망이 절망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과거가 현재에게, 꿈이 꿈에게,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한칼’, 시작합니다. 함께해주세요.

누가 : 할 말이 있는 지구인 누구(개인, 글쓰기모임 등 단체)든
무엇을 1 : 전체 전문 주제(제한 없음)와 각 소재 등이 담긴 6~12회 기획안, 그중에 포함될 칼럼 2편(편당 2000자)과
무엇을 2 : 공통 질문에 대한 300자 이하의 답변을
언제 : 2월23일 22시까지 6주 동안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보내실 곳 : opinion@hani.co.kr (이메일 제목: <한칼 공모> 성함)

* 공통 질문(답변은 모두 300자 이하)은 4가지입니다.
―지원한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선발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본인의 칼럼을 더 널리 다른 독자청중과 공유할 방안을 알려주세요.

* 단체가 선발될 경우, 한 코너를 소속 회원들이 나눠 연재하면 됩니다.
* 선발된 분들께 칼럼니스트 자격과 칼럼당 책정된 원고료를 드립니다.
* 성윤리, 표절 등의 문제가 확인될 경우 선발, 게재 등을 취소합니다. 지원서류는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온라인 접수만 가능합니다.
* 문의: (02)710-0631,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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