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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위기의 대학, 정부정책 대전환이 필요하다 / 호원경

등록 2021-03-29 04:59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

최근 대학 정원 미달 사태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기사의 헤드라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무너지는 지방대”이고, 벚꽃 피는 순서로 미달 사태가 닥칠 거라는 예측이 맞았다는 자조적인 보도까지 나오는 걸 보면 수도권에서 먼 지역의 대학일수록 타격을 크게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대의 몰락이 지방 경제의 붕괴로 이어져 국가균형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는 대학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실감케 한다.

출생아 수 감소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신입생 수가 정원에 못 미치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은 일찍부터 예견됐다. 이 사태에 대한 정부 대책이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된 대학 정원 감축이었던 점은 아쉽다. 신입생이 줄어드는 만큼 정원을 줄이는 것이 대학의 몰락을 막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조조정의 주요 타깃이 지방대학이 되면서 지방대 몰락을 가속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대학의 기능을 신입생을 뽑아 등록금을 받고 지식을 전수하고 학위를 주는 데에 두는 한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대학의 쇠락을 막을 수 없다. 제한된 수의 신입생을 놓고 서로 경쟁을 시키면 수도권에서 먼 지방에서 더 큰 타격을 입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국에 걸쳐 분포한 각 대학들을 진보된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는 연구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대학정책을 제안한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우리 사회가 등한시해왔지만 대학의 본래 기능은 ‘연구를 통한 지식의 생산’이다. 대학을 연구기관으로 변모시킴으로써 대학을 신입생 수의 감소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발전하는 기관, 국가균형발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하자.

연구 기능을 앞에 놓고 보면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도 달라진다. 올해 발표된 세계대학평가 전공별 순위에서 우리나라 대학 중 톱 10에 이름을 올린 대학이 하나도 없고, 톱 50에 들어간 전공 수가 지난해 69개에서 올해 54개로 대폭 줄었다. 대학평가의 핵심은 연구력인바, 이는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 역량이 낮아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어 정말 우려되는 일이다. 대학이 연구 경쟁력을 잃으면, 그 국가는 진보된 지식과 기술을 자체 생산하는 능력이 저하되고, 결국 선진국이 생산한 지식에 의존하는 국가로 머물게 된다는 점에서 대학의 연구 경쟁력 저하야말로 대학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하지만 대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입시 경쟁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대학의 연구 역량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은 아예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본 적조차 없다.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개인 경쟁을 기반으로 한 과제별 연구비에 의존해 이루어지고 있어 연구비가 많은 소수의 교수를 제외하면 수준 높은 연구를 할 엄두를 낼 수 없고, 연구비 경쟁에서 유리한 주제를 따라다니게 되어 긴 안목으로 독창적인 주제를 파고들 수 없다. 연구 경쟁력 정체의 원인이다. 이런 현실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연구하기 좋은 기관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시설과 장비의 투자로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연구에 참여하는 박사후연구원, 연구 장비와 시설을 운영하는 테크니션이 모두 대학의 구성원이 되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연구가 교수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대학 본연의 임무라는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대학을 연구기관으로 변모시키자는 것이 교육을 등한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강의를 통한 교육만을 대상으로 한 대학 혁신은 한계가 있다.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진정한 혁신을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소수의 대학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에 걸쳐 균형 있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함으로써 지방대학의 지식 창출 능력을 제고한다면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대학의 미래는 국가 미래 전망의 핵심이다.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력 양성과 지식 생산의 중심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대학을 도약시키기 위한 정책적 전환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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