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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기본소득은 ‘공돈’이 아니다 / 이항우

등록 2021-04-05 04:59수정 2021-04-05 13:52

이항우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그것이 공짜 돈이라는 것에는 크게 이견이 없는 듯하다. 차이라면 전자가 공짜 돈이라도 우리에게는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 반면, 후자는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말 기본소득은 공짜 돈일까? 오히려 그것은 노동의 대가로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 아닐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보자. 2006년에 신생기업 유튜브가 16억5000만달러(약 1조8600억원)로 구글에 팔릴 때, 종업원 수는 65명에 불과했다. 2012년에 18개월짜리 인스타그램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로 페이스북에 팔릴 때, 종업원 수는 13명에 지나지 않았다. 노동자 1인당 수백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기업 가치는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종업원들? 그들이 아무리 슈퍼맨일지라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원천은 당시 각각 월평균 3400만명의 유튜브 사용자와 3000만명의 인스타그램 회원의 노동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영상과 사진을 만들고, 올리고, 시청하고, 논평하고, 공유하는 사용자들의 노동이 그것을 생산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들 기업의 거래에서 얻은 경제적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경제의 중심이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등과 같은 물질재로부터 데이터, 정보, 지식, 브랜드 등과 같은 비물질재로 이동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에서 연구 개발, 소프트웨어, 광고, 저작권 등과 같은 비물질재에 대한 투자 증가율은 트럭, 기계, 사무실 등과 같은 물질재에 대한 그것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물질재는 소비를 통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고 변형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그것의 소비 과정은 곧 생산 과정이 된다. 나아가 비물질재를 생산하는 노동은 전체 사회 시간으로 확장하며, 노동 시간과 자유 시간 사이의 일상적 경계는 허물어진다. 아이디어나 상징을 다루는 노동은 사무실에서만이 아니라 목욕 중에도 혹은 꿈속에서도 발생한다.

한마디로, 오늘날 사회적 부와 가치는 사회 전체가 공장이 되는 ‘사회-공장’에서 창출되고 있다. 고용된 임금노동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 활동 자체가 거대한 부와 가치를 생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브랜드 가치가 기업의 시가총액에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현재 기업의 시가총액에 대한 브랜드 기여율은 맥도널드 약 42%, 나이키 32%, 코카콜라 31%, 아이비엠 31%에 달한다. 소비자들의 집단지성은 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무임 노동이 되고 있다. 기업에 신뢰도나 명성을 부여하는 소비자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지만, 기업은 이러한 네트워크 외부성의 과실을 독식한다. 이러한 레버리징을 통해 기업이 얻는 대규모 수익은 자본 투입과 이윤 산출 사이의 전통적인 선형적 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불균형과 비대칭을 바로잡기 위해 요청되는 제도다. 데이터, 정보, 지식, 정동, 브랜드 등과 같은 비물질재 가치의 대부분은 네트워크 속 인구들의 다양한 자유 또는 무료 노동의 산물이며, 기본소득은 그러한 노동이 창출한 가치를 적절하게 인정하고 정당하게 보상하는 사회정책이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사람이 생산한 부의 재분배 제도가 아니라 자신이 생산한 가치와 직접 연결된 일차 소득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2011년 2월 온라인 언론 사이트 <허핑턴 포스트>가 아메리카 온라인에 3억1500만달러에 팔렸다는 결정이 알려지자, 수천명의 블로거는 그 가치의 적어도 3분의 1은 해당 사이트에 기사를 무료로 올린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며 부불 노동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기본소득도 이와 마찬가지 근거에서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당연한 권리다. 그것은 준다면 좋겠지만 안 줘도 어쩔 수 없는 공짜 돈이 아니라, 인정받지도 지불되지도 않는 우리의 부와 가치 생산 노동의 대응물, 즉 사회적 임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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