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게임에 관한 글을 읽다가 빵 터진 적이 있다. ‘나쁜 것들 중에 덜 나쁜 것’을 겨루는 질문들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가령 ‘평생 피자 테두리만 먹기 대 평생 치킨 목만 먹기’. 그게 뭐냐고 투덜대다가도 진지하게 고르게 된다는 것이 밸런스게임의 묘미다.
그러나 이 게임의 진짜 핵심은 한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이슈에서 드러난다. 이건 어떤가? ‘언론 없는 정부 대 정부 없는 언론.’
요즘 독자들은 별로 공감하지 않겠지만, 3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주저 없이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하겠노라고 단언했다. 정부의 대표 격인 대통령이 정부 대신 언론을 선택하다니. 그만큼 언론(자유)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어서 지금도 간혹 인용되는 말이다.
웃자고 시작한 밸런스게임에 대한 모독이라고 꾸짖을지 모르지만 게임이 떠오른 것은 더 좋은 저널리즘이 결국 지금, 여기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뉴스와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굴러가게 만들어주는 마지노선은 품질 높은 언론을 향한 저널리즘 실천이 작동할 때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뼈 때리는 현실자각은 언제든 온다. 지난달 말 로이터 연구소가 발간한 조사결과만 하더라도 그렇다. 6명으로 구성된 ‘뉴스 신뢰도 프로젝트’ 연구진이 지난 1~2월 영국, 미국, 인도, 브라질 등 4개국에서 1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인터뷰(포커스그룹인터뷰 포함) 결과를 말하는데, 이 중 저널리스트와 독자들의 생각이 선명하게 대조되는 몇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눈길을 끈다. 저널리스트가 생각하는 뉴스 신뢰도와 독자들이 생각하는 뉴스 신뢰도가 몇몇 지점에서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반 독자들은 언론인이라면 결코 뉴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을 뉴스로 인식하거나, 언론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대상도 저널리스트라고 예시하며 뉴스 신뢰도를 설명했다. 오락적 요소가 강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을 뉴스 신뢰도를 가리키는 예로 일컫는 응답자도 있었다. 언론인 입장에서는 그건 뉴스나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이미 독자들에게 그런 구분은 의미 없는 미디어 환경이라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저널리스트들이 좋은 저널리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투명성이나 편집 과정과 같은 저널리즘 실천에 대해 일반 독자들은 별다른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독자는 자신에게 친숙하거나 어떤 미디어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명성(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에 의거해 뉴스 신뢰도를 판단했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자신이 원래 좋아했거나 친숙하게 알고 있는 미디어에 나오는 뉴스라면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신뢰도 높은 뉴스라고 간주해버리는 식이다. 또 일부 유명 언론인을 제외하고는 저널리스트 개개인에 대해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알려 들지도 않았다.
이 대목에서 조사결과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자의 신상을 공개하며 혐오와 공격을 조장하는 ‘좌표 찍기’가 벌어지는 극단적인 상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나라 언론인들은 저널리즘 실천을 위해 이런 밸런스게임을 해야 할지 모른다.
‘좌표 찍는 독자 상대하기 대 무관심한 독자 설득하기’.
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