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소나무에 새순이 돋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산천은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조석으로는 싱그러운 봄기운에, 제법 넓어진 나뭇잎 사이로 꽃과 풀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하지만 한낮이 되면 수은주가 30도에 육박하여, 하루 사이에도 봄과 여름을 오간다. 절기상 입하도 지난데다 지구온난화로 여름이 더 빨라진 것을 감안하면, 때 이른 더위가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남동풍이 따뜻한 공기를 한반도로 밀어 올리면, 기온이 크게 올라 봄철에도 여름 날씨를 체감하게 된다. 계절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지구 곳곳에 돌림노래가 들린다. 북반구가 봄을 노래하면 반년의 박자를 쉬고 난 후, 남반구에서 다시 봄이 시작한다. 양 반구가 주고받는 합창곡을 놓고 한때 노래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중세 교황청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하였으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하여 교황청의 미움을 샀다. 17세기 막강했던 신학의 권위 앞에 과학은 무릎을 꿇어야 했고, 고령의 과학자는 외진 별장에 연금되어 여생을 고독하게 보내야 했다. 맞은편에 보이는 수도원에는 결혼 안 한 큰딸이 머물고 있었다. 지척에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린 자녀를 위해, 편지를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비의 심정은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사방이 단절된 곳에서 대신 밤하늘을 향해 마음을 열고 비파를 연주하며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자신을 과학으로 인도했던 우주의 질서는 악기를 통해 음악으로 재현되고, 음악은 세상의 섭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여 삶을 지탱하는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천체의 운항처럼 자연이 질서정연하게만 진행된다면, 무척이나 따분한 일상이 될 것이다. 사막의 한가운데에서는 낮에는 40도를 웃돌지만, 밤에는 영하 4도까지 떨어진다. 한란의 교차가 극심하다 해도, 매일 같은 리듬이 반복되면 규칙성의 덫에 걸려 감각이 무뎌진다. 무풍지대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뱃사람처럼 차라리 바다에라도 빠지고 싶은 심정이 들 것이다. 어릴 때 불렀던 “반짝반짝 작은 별”을 반복해서 들려준다면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변주곡을 들으면 쉬지 않고 재잘대는 종달새 소리처럼 유쾌해진다. 음악의 대가는 주제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화성이나 리듬을 12번이나 변형하여 곡의 분위기를 시종 새롭게 이어준다. 주제 선율에 담긴 태아적 모성에 지속적으로 호소하면서도 화려한 기교와 장식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안정과 갈등의 타협을 모색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 조화와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 대기도 쉴 새 없이 변주곡을 연주한다. 온대 저기압이 진행하면 날씨의 주제 선율이 흐른다. 어제는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을 몰고 오며 구름으로 천지를 뒤덮고 비를 뿌리더니, 오늘은 맑게 갠 하늘에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와 쾌적한 순간을 선사한다. 매년 봄은 오지만, 한반도를 지나가는 온대 저기압의 생김새는 매번 다르고 날씨의 변주도 그때마다 달라진다. 계절의 행진이 저음의 반주를 연주하며 탄탄하게 베이스를 깔면, 그 위로 날씨가 다채로운 변주곡으로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장식해주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맑게 갠 봄날이면 양지바른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 구름은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여기서 생겼다 저기서 사라진다. 어찌나 빠르게 모양이 달라지는지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대지의 따스함이 느껴져 오면, 구름이 연출하는 드라마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날씨의 변주가 아름다운 건, 오랜 세월 견고하게 삶의 터전을 지탱해주는 땅의 숨결이 함께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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