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이주희ㅣ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긴급한 현재, 몇 가지 살펴볼 점들이 있다.
우선, ‘아시아 최고’ 대 ‘오이시디(OECD) 최하’ 논쟁이 보여주듯이, 최저임금 조사 대상 등의 차이로 국가 간 최저임금 비교는 무의미하다.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높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가 최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1인 이상 영세업체를 모두 포함하여 중위임금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이 지표를 10인 이상 사업체의 중위임금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우리처럼 측정하면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처럼 높아지고 있는지 중위임금이 최저임금처럼 낮아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점점 악화되는 임금불평등에 비추어보면 후자가 더 맞는 듯하다.
최저임금액의 절대 비교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별 사회적 임금(social wage)에는 큰 격차가 있다. 저렴한 공공주거시설을 갖추고 대학 교육비가 무상이며 의료비 부담이 거의 없는 풍부한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국가의 최저임금과 그렇지 못한 우리의 최저임금을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게다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인구는 미미하다. 우리는 노동자 다섯 중 한명이 영향을 받는 나라이며 그들 중 상당수가 그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언론에서는 영세자영업자를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경제단체에서 그렇게 열심히 최저임금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세업자를 그렇게 걱정하였다면 대기업이 동네 상권을 위협하는 문어발식 확장부터 자제해야 했다. 또한 자영업 비중이 이토록 높아지도록 정년이 무색한 중장년의 이른 나이부터 노동자를 회사 밖으로 내몰지 말았어야 했다.
최저임금에 대한 재계의 과도하다 싶은 공격적 태도는 우리가 저임금에 의존해 발전해온 국가라는 방증이다. 저임금이 유일한 경쟁력인 중소기업이 아직도 많고 대기업은 그들과의 불공정한 원·하청 거래로 큰 이득을 보고 있다. 저임금 체제가 유지되어야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데, 기득권 세력이 이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원할 리 없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바로 이런 고질적인 경제의 깊은 이중구조에 작은 균열을 내어 유의미한 변혁의 경로를 찾아볼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최저임금만 올랐을 뿐, 기업의 고용유지 노력을 통한 과다한 자영업 규모 축소 방안, 하청기업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 정규직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임금불평등 축소 노력,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부 자영업 구조조정에 대비한 튼튼한 사회안전망 마련, 이 모두가 그동안 부재했다. 그래서 더더욱 모든 준비를 하고 최저임금을 더 천천히 올려야 했다는 의견까지 나오는데, 동의할 수 없다. 최저임금이 올라 꼭 필요한 조치인데도 되지 못했던 일들이다.
내 기업의 노동자는 임금이 낮을수록 좋은 노동자이지만 다른 기업의 노동자는 임금이 높을수록 좋은 소비자이다. 임금이 지나치게 낮으면 현재 건설업에서 볼 수 있듯이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가 잠식되는 역기능이 발생한다. 임금비용이 높아지면 저임금이 아니라 임금 외 기술개발 등을 통한 혁신에 매진하는 우량 기업들이 더 약진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거래 관행 등 지불 능력을 저해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대신, 최저임금을 묶어 노동자의 저임금에 기댄 운영을 지속하려는 한 우리는 계속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극단적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 거의 모든 선진국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재,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코로나로 불가피하다며 역대 최저 수준의 1.5%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되었던 지난해, 협약임금인상률은 3%가 넘었다. 최저임금이 그리 우스운지, 물어볼 사람은 없지만, 대답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