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배복주ㅣ정의당 부대표
2013년 10월 육군에서 여성 대위 죽음과 2017년 5월 해군에서 여성 대위 죽음, 2021년 5월 공군에서 여성 중사 죽음은 모두 상관에게 성폭력 피해를 겪은 뒤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무엇이 이 여군들에게 고통스럽고 아픈 선택을 하게 했을까. 죽음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군은 이러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지난 6월1일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중사의 부모님과 가족을 만나 이 중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중사는 공군 부사관으로 임관하면서 국가와 군을 위해 성실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자 했다고 했다. 육군 여군 대위도, 해군 여군 대위도 당당하게 군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들에게 군은 견딜 수 없는 치욕과 불명예를 안겨준 것이다.
군은 지휘체계가 명확한 상명하복의 위계적인 조직이다. 전시상황에 대비하여 신뢰에 기반한 전우애가 강조되고 평상시에도 ‘가족’처럼 장기간 서로에게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조직문화가 있다. 군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군인들이 집단거주하면서 일상을 보내는 시설이기에 구조적으로도 폐쇄된 공간이다. 또한 군은 군에서 일어난 범죄를 군사경찰이 조사하고 군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군사법원에서 판단하는데, 이들은 군의 지휘를 받는다. 이런 구조에서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권력관계가 명확한 조직이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의 발생이나 사건 해결에서 지휘계통에 있는 지휘관이나 책임자들에게 높은 성인지감수성이 요구된다. 지휘관의 성인지감수성과 성평등 인식이 높으면 예방과 사건 해결이 원칙적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사건은 은폐되고 2차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불완전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신고하고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온전히 군 조직의 체계에서 자신의 피해구제를 기대해야 하는 피해자는 참으로 두렵고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련의 성폭력 피해 여군들은 이처럼 폐쇄적인 군에서 억울한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누구도 믿지 못하고 마지막 선택으로 강력한 저항의 메시지를 세상에 남겼다.
그렇다면 군은 변화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군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했다.
여군을 회식 자리에 불러내서 술 마시기를 강요하고 사적인 관계를 요구하고 거절하면 스토킹하면서 괴롭힌다.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가 발생해 상부에 보고하거나 신고하려고 하면 군의 명예를 위해 참아달라고 한다. 그래도 신고를 한다고 하면 피해자에게 되레 군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는 말로 비난한다. 피해자가 신고해서 조사나 수사가 시작되면 피해자의 평소 행실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고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혐의가 입증되어 가해자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거나 군법원에서 재판을 받더라도 경징계나 경미한 처벌을 받고 다시 부대로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여군은 결국 군을 떠난다.
국군수도병원 분향소를 찾은, 성추행 피해 이후 2차 피해에 시달리다가 군을 떠난 해군 부사관 출신의 한 여성이 눈물을 흘렸다. 비슷한 피해를 겪었지만 운이 좋아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러한 피해자, 증언자가 얼마나 더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들이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까.
이제 군 스스로 자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엔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 군의 성차별적 구조를 타파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군의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해체해야 한다. 민주적 통제를 통한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군은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가해자에게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합당한 처벌을 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신뢰와 안전의 신호를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