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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께: 이선호군 49재를 치르고

등록 2021-06-10 17:09수정 2021-06-11 10:16

[기고] 김기홍ㅣ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

이선호군의 유족들께서는 지난 6월9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 거리에서 49재를 치렀고 여전히 장례는 치르지 못한 채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빈소를 다녀갔지만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뿐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안중백병원까지 찾아오셔서 유족을 조문하시고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을 더 살피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후에도 산재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선호군 산재사망 이후인 4월23일부터 6월7일까지 공식통계만으로도 51명이 노동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초일류 기업이라고 자랑하는 삼성의 노동현장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6월3일 평택 삼성반도체 건설현장에서 야광 조끼를 입고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숨진 그는 삼성물산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당 10만원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지게차 기사 역시 삼성물산의 또 다른 협력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이선호군 사고와 크게 다른 것이 없습니다.

코로나19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데, 기업은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위험한 일은 모두 비정규직에게 떠맡기고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내자는 사회적 요구는 아주 쉽게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습니다. 더욱이 기업은 인력을 감원하고 업무 강도는 높여, 노동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위험 속에 내몰고 있습니다. 구의역 김군이 그랬고 태안화력발전 김용균이 그랬으며, 건설노동자 김태규가, 청년장애인노동자 김재순이 그랬습니다. 23살 이선호군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왜 매번 맞닥뜨려야 하는 것인가요? 과연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목숨과 안전은 기업의 이윤보다 늘 뒷전이어야 하는 것인지요.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한 해 2400여명이 사망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산재사망률 1위를 21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뤄낸 경제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왜 우리는 늘 다른 이의 죽음과 고통에 기대어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인지요?

원청이 위험을 하청업체로 외주화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평택항뿐만 아니라 노동현장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는 불법도급과 불법파견에 대해 신속하면서도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드시 재개정해야 합니다. 지금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에나 시행됩니다. 그것도 50인 이하 사업장과 50억원 이하 건설공사 사업장은 3년 뒤에나 시행됩니다. 더욱이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재발률이 무려 97%에 달하며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한 처벌 가운데 실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이 0.4%밖에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 법 위반으로 내는 벌금은 평균 450만원에 불과합니다.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사망사고가 전체의 80%에 이릅니다.

이렇듯 중대재해처벌법을 재개정하고 시행령 속에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이선호군의 유족께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선호’가 더 이상 다치고 죽지 않도록, 더 이상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게, 이선호군의 영혼이 외롭지 않게, 이선호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더 이상 노동현장에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께서 범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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