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장희 ㅣ 한국외대 명예교수
지난 7일 85명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그 유족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배소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제34부(김양호 재판장)는 각하 판결로서 피해자 패소 판결을 하였다. 2015년 5월 소송을 제기해 6년을 기다려온 1심 판결에서 법정이 열린 지 1분 만에 “각하” 선고를 내렸다. 이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가 승소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는 정면배치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2018년 대법원 판결과 비교하면 사실상 원고만 다를 뿐 같은 사안에 다른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 배상 판결의 소수의견을 따른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일제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의 법적 성격에 있다. 이번 판결은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의 불법성에 대해서 한국 국내법적 해석일 뿐, 국제법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우선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탈식민화는 국제법과 국제 판례, 국제회의에 의해 규정, 선언되고 있다.
국제법상 탈식민화는 ‘자결권’ 형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국제법은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자결권’을 유엔 헌장 1조 2항, 55조, 73조, 74조에서 명문화하였다. 이를 구체화한 1960년 유엔 총회의 ‘식민지국가와 인민에 독립부여 선언’에 이어, 1970년 유엔 총회의 ‘국가 간 우호 관계 및 협력에 관한 국제법 원칙 선언’의 다섯번째 ‘인민의 자결 원칙’에서 조속한 식민지 지배 종식을 국제법 원칙으로 선언하였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권고적 의견에서 식민지 불법성을 실제로 적용한 1975년 ‘서부 사하라 사건’에서 1970년 선언의 ‘인민의 자결 원칙’을 법적 확신으로 실제 활용하였다. 또 유엔이 조직한 인종차별금지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2001년 더반 선언(Durban Declaration)의 제13장, 14장은 식민주의는 인종주의, 민족차별주의, 외국인 혐오증을 조장한다며 식민지배 청산을 21세기의 시대적 과제로 선언했다.
둘째로 강제징용의 불법성에 대해서 전시 민간인 강제징용을 반인도적 국제범죄로 규정한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조약이 있다. 1940년 당시 일본은 1930년 강제노동 금지에 대한 협약을 비준한 회원국으로서 명백히 협약을 위반한 것이다.
이처럼 일제의 식민주의 지배와 강제징용은 국제법상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더구나 국제사회의 큰 흐름도 과거 주권국가 중심주의보다는 국제법 주체로서 개인의 법적 지위 인정 및 인권신장주의로 발전해가는 추세다.
셋째 1948년 제정된 헌법 전문에서는 임시정부의 법통성 인정을 한국 헌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고, 일제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1910년 강제병탄조약을 불법으로 본다. 설사 1940년대 식민주의가 유럽과 미국에서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일본의 1910년 한국강제병탄조약의 과정과 내용은 유럽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한-일 병탄조약은 군사적 압력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조약의 성립 요건인 자유로운 의사 합치의 부재 및 조약체결권자의 인장 위조 등 처음부터 불법 무효인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1910년 한국강제병탄조약은 원인무효이다.
이번 재판에서 85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손배청구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한 1965년 청구권협정안에서 경제적, 상업적 손해배상청구가 아니다. 불법적 식민지 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군수업체의 반인도적 불법적 행위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성격의 손해배상청구이다.
식민지배체제의 불법성이 국제법 원칙으로 결의되었지만, 아직도 국제법에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를 걷어내는 중이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식민지 종식 및 인간의 존엄 등의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는 추세이다.
한국의 사법부도 국제법과 국제사회의 큰 흐름을 정확히 간파하고 과거 식민지하에서 고통받은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상처 치유에 더 솔선수범해야 한다. 한국 법원은 피해자 손을 들어주는 경우, 한-일 관계, 한국의 국제 신뢰성 추락 등 지나친 국가중심주의만을 의식하는 것 같다. 이것은 국가주권보다 개인의 인권 신장을 가장 중요시하는 현대 국제법 발전 추세에 맞지 않는다.